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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광묵은 가학으로 유학을 수학하고 부친의 영향을 받아 충의정신을 배양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항거하여 안병찬 등과 김복한을 총수로 한 의병을 일으켜 반개화, 반침략 투쟁을 전개하였다.
1896년 홍주의병이 관찰사 이승우의 배반으로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상경하여 송수만 등과 도약소를 치리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적에 대해 복수할 것을 청하고 아울러 국외로 도망한 적을 잡아오지 않는 외부대신 이완용과 법부대신 한규설의 탄핵을 상소하였다.
1901년 8월에는 조정에서 내린 내부주사 직을 국모의 복수를 할 기약도 없는데 영예를 받을 수 있느냐면서 강하게 거절하였다.
1904년 일본인 나가모리가 황무지개척권을 요구하자 김기우 등과 함께 반대 통문을 작성하고 일본공사를 만나 이를 질타하였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에 채광묵은 안병찬 등과 또 다시 의병을 일으켰다. 민종식을 의병장에 추대하고 홍주성을 점령하고 일본 경찰대를 물리쳤다.
참모장의 직을 받고 항전하던 채광묵은 이토 히로부미의 명령에 따라 파견된 2개 중대가 넘는 일본군의 공격을 받고 수백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순국하고 말았다.
병든 몸을 끌고 의병에 참전한 부친을 모시고 항전하던 아들 규대도 홍주성전투에서 부친과 함께 전사했으니 아버지는 충(忠)에 죽고 아들은 효(孝)에 죽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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