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마리 용이 승천한 포구인 구룡포는 구릉지가 많고 평지가 적으며, 겨울은 따뜻하고 여름은 서늘한 기후로 15.8km의 긴 해안선에 둘러싸여 있다.
구룡포항은 수산업 중심지이자 어업전진기지로서 근해어업이 발달했고, 주로 오징어, 꽁치, 대게 등이 많이 잡힌다.
구룡포항의 등대와 갈매기, 귀항하는
어선을 배경으로 솟아오르는 겨울철 해돋이는
보기 드문 장관이다.
여름철의 피서지로 안성맞춤인 구룡포 해수욕장은 포항에서 24km, 구룡포읍에서 1.5km쯤 떨어져 있다. 반달모양으로 펼쳐진 모래사장은 길이가 400m에 이르고 있다. 또, 해수욕장의 인근에는 많은 횟집들이 있다. 여기 에서는 갓 잡은 싱싱한 광어, 도다리, 장어, 도미 등의 생선회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구룡포의 마을과 자연
구룡포에 있는 마을로는 석병리와 삼정리, 구룡포리, 눌태리등이 있다.
석병리라는 지명은 암벽이 마치 병풍을 세워 놓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남쪽에는 길게 바다쪽으로 뻗은 송림을 배경으로 하여 폐교된 석병초등학교 터가 있다. 마을 남동쪽 바닷가에는 병풍모양을 하고, 끝이 뾰족 한 아흔아홉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하여'아흔아홉골짜기'라고도 불리는 병풍바위가 있다. 진등 동쪽에는 흔히 '봉우재'라고 부르는 대곶봉수대(大串熢燧臺)터가 있다. 이 봉수는 남쪽으로 뇌성산봉수, 북쪽으로 사지봉수에 응하였다 한다.
석병1리에는 우리나라 육지로서는 가장 동쪽끝 자락에 표석이 위치하고 있다.
석병리에 있는 두일포는 마을 뒷산의 모양이 마치 말을 엎어 놓은 것 같고, 마을 앞의 나루터가 날 일자형을 이루고 있어,두일포라 부르게 했다. 삼정리는 마을의 지세가 좋아 3정승이 날 것 같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이라 한다. 삼정리 마을 앞바다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바람 맑고 달 밝은 밤이면 신선이 놀았다고 하는 관풍대라는 바위섬이 있다.
구룡포읍 소재지에 위치한 구룡포리는 우체국, 파출소, 단위농협, 영일수산업협동조합, 신협, 새마을금고 등의 관공서와 금융기관, 학교등이 위치하고 있다.
일제시대인 1923년에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가 그 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쳤다는 것이 구룡포의 지명유래이다.
1971년 문을 연 구룡포 제일국수공장에서는 아직도 해풍에 국수를 말리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구룡포 토속 음식인 모리국수도 별미다. 근대문화역사거리의 일본식 찻집에서 마시는 차 한잔이 여행의 낭만을 더한다.
석문동(石門洞)은 옛날의 장기목장성의 출입문인 돌문(石門)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돌문 혹은 석문리라 불려오고 있다.
돌문은 높이 11m, 폭 6m정도의 자연석 바위였는데, 매암산을 중심으로 방목해 놓았던 말을 해 질 무렵 몰이하여 이 문을 통과할 때 숫자를 세어 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안전사고의 위험과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1988년 제거하였는데, 그 돌 일부는 읍사무소 정원에 있다. 3.4리에 해당한다.
구룡포5리의 마을 뒤편 언덕위에는 충혼탑, 충혼각, 용왕당, 구룡포개척자유공탑 등이 있는 구룡포공원이 있다. 충혼각은 1960년에 건립 된 호국 영령을 모신 사당으로 현재 중위 안대수 외 178위를 모시고 있다. 용왕당은 이지역의 풍어와 안전 조업을 비는 제당이다. 구룡포개척자유공탑은 일제 때 구룡포 개발에 공헌한 일본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인데, 해방 후 친일적 내용이 새겨져 있는 탑의 표면을 훼손하여 내용은 알아볼수가 없다.
사라끝(沙羅末)은 구룡포만의 동쪽 끝에 자리잡고 있는 마을로, 옛날 이 곳에 모래밭이 있었기 때문에 사라끝(沙羅末)이라 불려 왔으며, 마을 주민들이 풍어제를 올리기 위하여 인근 구룡포 5리 지역에 용왕당이라는 제당을 세우고 용주리라고 불렸는데, 마을 지형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국이라는 데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약전(樂田)은 눌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예로부터 이 마을에 약초를 많이 심었다고 해서 약전이라 불러 왔다. 한때 장기현 내북면 소재지였을 때 이 곳에 시장이 있었다가 1914년 내북면에 외북면이 통합되면서 창주리로 옮겨 왔는데, 이에 연유하여 구장터라고도 하며, 옛날에 이마을에 큰 숲이 있었다고 하여 수페라고도 한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는 1883년에 '조일통산장정' 이후 일본인 어부들이 조선으로 와서 살았던 곳이다.
해방 이후 '일본인 가옥 거리'로 가옥 몇채만 남아 있던 곳을 포항시가 '근대문화역사거리'로 조성하였다.
음식점으로 사용되었던 '후루사또야' 가옥은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현재 이 가옥은 일본 전통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다양한 일본의 차를 맛 볼 수 있으며, 일본의 전통 의복인 유카타를 입어보는 체험도 이루어지고 있다.
근대 문화 역사 공원에서 동해바다를 내려보면 구룡포항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아름다운 경관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경관대상을 받기도 했다.
포항시는 2010년에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조성사업’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작업이후 현재 이곳은 포항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자리하고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로 불리던 이곳은100여년 전 일제강점기 때 풍부한 수산자원을 가진 구룡포에 일본인들이 들어와 어업과 선박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을 통한 경제활동을 하며 집단 거주지를 형성한 장소다.
구룡포 근대문화역사거리 조성사업을 한 포항시는 2012년에는 ‘구룡포 근대역사관’을 개관하여 당시의 생활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구룡포 근대역사관’은 당시 생활모습 뿐만 아니라 포항의 항일투쟁 모습도 전시돼 있어 교육의 장으로도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근래에는 거리 전체를1930년대 과거의 모습으로 재현했으며 근대문화역사거리 내에 일주문, 구룡포 공원 입구 돌계단, 충혼각과 용왕당 등도 정비했다.구룡포 공원 내에는 구룡포의 유래와 관련한 용 조형물도 설치해 놓고 있다.
'사회교실 > 지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헬 지대와 홍수 사례 (0) | 2015.12.20 |
---|---|
동남아시아의 문화 다양성 (0) | 2015.12.18 |
자오선과 표준시 (0) | 2015.11.16 |
습지와 관련 람사르 협약 (0) | 2015.11.04 |
걸음과 생활 (0) | 2015.10.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