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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고려의 자주외교

by 산골지기 201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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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은 993년에 1차 침입을 한 이후에 1010년에는 2차 침입을 단행하였다.

 

 2차 침입당시에는 개경이 함락되었으며 불교의 힘으로 침입을 막기위해 초조대장경을 조판하였다.

 

이후 1018년에는 3차 침입을 당행했는데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였다.

 

이후 고려가 송과 비공식적인 교류를 계속하자, 거란은 두 차례 더 고려를 침공하였다.

 

그러나 고려는 양규, 강감찬 등의 활약으로 이를 물리쳤다.

 

이후 고려, , 요 사이에는 세력 균형이 이루어졌으며, 고려는 요와 조공 관계를 맺고 서로 교역하며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였다.

 

금 남송과는 실리 외교를 하였는데

12세기에 들어 여진이 성장하면서

고려를 위협하자 윤관은 별무반을 조직하여

 여진 정벌에 나섰다.

 

 

그는 여진족을 물리친 후 동북 지역에 9성을 쌓았다.

 

 

 

그러나 여진족이 땅을 돌려줄 것을 간청하는 데다 방어도 어려워 결국 1년여 만에 9성을 여진에 돌려주었다.

 

이후 금이 송을 강남 지방으로 내몰고 화북 지방을 차지하자, 고려에서는 금에 대한 사대 여부를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였다.

 

고려사절요 기록 ---

  

인종 4년에 대부분의 신하들은

사대를 할 수 없다고 주장

 

 


고려시대사(수정 증보판)

저자
박용운 지음
출판사
일지사 | 2008-03-05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표지글] 고려시대사는 사람에 비길 때 한국역사의 허리에 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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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그려진 척경입비도에는

 

고려의 국경을 알리는 비를 세우는 장면이 잘 나타나 있다.

 


 

척경입비도 비석에는 ‘고려지경(고려의 경계)’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결국, 고려는 현실을 인정하고 금에 조공하였다.

 

한편, 고려는 요와 금에 대한 조공과 별도로, 송 및 남송과 학술과 사상 등의 문물을 교류하였으며 해상을 통한 교역도 지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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