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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180

아관파천 아관파천에서 아관은 러시아 공사관을 의미하고요 파천은 옮긴다는 의미입니다. 쉽고 좋은 우리말을 놓아두고 이렇게 불편하고 어려운 한자어를 사용하는것이 때로는 불만스러울때가 많이 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조선 국민의 대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하고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 전국이 소란해지자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으로 수병(水兵) 백명을 서울로 데려왔다. 이에 친러파인 이범진 등은 베베르와 공모하여 건양 1년(1896년) 2월 11일에 국왕의 거처를 궁궐로부터 정동(貞洞)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다. 고종은 옮긴 당일 내각총리대신 김홍집을 비롯하여, 김윤식, 유길준, 어윤중, 조희연, 장박, 정병하, 김종한, 허진, 이범래, 이진호를 면직하고, 유길준 등을 체포하도록 명하였다. 이어.. 2017. 9. 2.
대한자강회 개화파의 영향을 받은 단체로는 대한자강회를 들수가 있습니다 대한자강회는 1906년 3월 대한제국 경성부에서 결성된 애국계몽 운동 계열의 정치 단체인데요 장지연, 윤효정, 윤치호 등이 주도하였습니다. 이준이 결성했다가 해산된 헌정연구회를 계승한 애국계몽 운동 단체인데 헌정연구회는 1905년에 해산당했으며, 1906년에 장지연, 윤효정 등이 중심이 되어 학술문화 단체를 표방하며 한성부에서 조직했고 회장으로는 윤치호가 추대되었습니다. 1906년부터 1907년까지 자강운동을 주도한 단체인 대한자강회는 창립취지서에서 "한국은 자강지술을 강구하지 않아 인민은 우매하고 나라는 쇠퇴하여 마침내 이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라고 분석하고, "그러나 만일 이제라도 우리가 분발하여 자강에 힘쓰고 단체를 만들어 힘을 합한다면 .. 2017. 7. 15.
갑오개혁과 을미개혁 갑오개혁과 을미개혁은 1년간격으로 이루어졌는데요 넓게 보면 같은 범주로 많이 포함을 시킵니다. 1894년에 1,2차 갑오개혁이 있었고요 이듬해인 1895년 을미년에 3차 개혁이라고 할수가 있는 을미개혁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을미개혁은 1895년 10월 8일(음력 8월 20일) 을미사변 직후부터 1896년 2월 11일(음력 을미년 12월 28일) 아관파천 직전까지 추진된 조선의 제도 개혁을 말한다. 제1·2차 갑오개혁을 주도한 김홍집이 내각의 수반이었고 갑오개혁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아 제3차 갑오개혁이라고도 한다. 을미개혁은 명성황후가 시해되었던 을미사변 직후에 추진되었고 친일세력들이 내각을 구성하여 주도한 개혁으로, 3차에 걸친 갑오개혁들 가운데 가장 친일적 성향이 짙었다 2017. 6. 22.
을사조약과 고종 을사조약은 1905(광무 9)년에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하여 강제적으로 맺은 조약 입니다. 을사조약은 고종이 허락하지 않은 상황에서 을사오적들이 일본과 맺은 조약인데요 고종의 도장도 고종몰래 찎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고종은 을사조약에 적극 반대했던 인물이라고 보면 되겠는데요 을사조약을 계기로 조선은 외교권을 일본에게 뺴앗기고 일본은 조선에 통감부를 설치하여 적극적으로 내정을 간섭하게 됩니다 2017.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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