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성리학 일변도의 사상적 흐름에 밀려 표면화하지 않았던
양명학적 학풍이 정제두를 중심으로 서서히 등장하였습니다.
왕수인의 여러 주장을 수용하여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이룩한 정제두는
자신의 학문적 근거지를 강화도로 옮겨 ‘강화 학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강화 학파’라고 불리는 정제두의 계승자들은 양명학을 받아들이면서
도교와 불교까지 수용하는 개방적인 학문 태도를 견지하였습니다.
양명학파들은 인간을 도덕적 주체로 간주하여
철저하게 자기 내면에 충실하라고 주장하면서,
참된 자아의 각성과 생활 속의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