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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인물

문익점과 목화

by 산골지기 201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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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점에 의한 목화씨의 전래와 재배 및 목면의 생산은 우리나라 직물사뿐

만 아니라, 산업구도나 생활문화에도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의생활 향상에서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고,

씨아나 물레, 가락, 날틀 같은 면직기구의 제작은

생산도구 제작의 단초를 열었다.

 

 

 

탈지면은 지혈이나 외과치료용으로 쓰이고, 솜은 초나 화약의 심지로 유용

되었다. 내구성이 강한 무명실로 만든 바느실이나 노끈, 낚싯줄, 그물은 일

상용품을 일신시켰다. 그런가 하면 무명은 물물교환에서 통화수단으로 이

용되기도 하고, 일본이나 중국에 대한 주요 수출품의 하나이기도 했다.

 

 

 


 

 

 고려조 우왕 때에 문익점이 살던 마을인 배양리에 효자비를 세우고, 조선 정종 때는 그가 세상을 뜨자 묘사를 짓게 했다.

 

조선시대

에도 추앙된

문익점

 

 태종 때는 조선왕조에서 관직을 지내지 않았음에도 예문관제학을 하사하고 강성군(江城君)으로 봉하면서 시호를 충선(忠宣)이라 했으며 부조묘도 세우게 했다.

 

세종대왕에 이르러서는 영의정을 증직하고, 그가 백성의 살림을 넉넉하게 했다고 해서 ‘부민후(富民侯)’란 칭호를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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