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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인물

고산자 김정호

by 산골지기 2016. 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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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자 김정호는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지리학자다.

 

 <대동여지도>는 우리 나라의 고지도 중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김정호 자신이나 그가 지도나 지지를 제작한 과정 등은 잘 밝혀져 있지 않다.

고산자의 출생지는 오랫동안 황해도 봉산(鳳山)이라고 알려져 왔는데, 1980년대 후반에는 황해도 토산(兎山)이라는 설이 제기되었다.

 

김정호의 출생과 사망시기도 분명하지 않다. 청도 김씨(淸道 金氏) 족보에도 김정호는 실려 있지 않으며, 조선 후기의 어느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장을 역임하고, 고지도 연구에 업적을 남긴 김양선(金良善) 목사는 김정호가 1804년에 태어나 1866년에 사망했다고 기록하였다.

 

김정호가 제작한  전국지도

 <청구도> (1834),

<동여도(東輿圖)>(1857),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 1864)

 

 

근거를 명시하지 않았으나 이 지적은 타당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정호의 마지막 저작으로 추정되고 있는 『대동지지(大東地志)』에 민비(閔妃)를 고종의 왕비로 기록한 것으로 볼 때 1866년까지는 생존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호와 그의 업적에 관한 기록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4종 정도다.

 이규경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중의 「지지변증설(地志辨證說)」과 「만국경위지구도변증설(萬國經緯地球圖辨證說)」,

조선시대 하층계급 출신으로 각 방면에 뛰어난 인물들의 행적을 모은 겸산 유재건(兼山 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중 「김고산정호(金古山正浩)」,

 최한기가 쓴 <청구도(靑邱圖)> 제문(題文),

고종대에 총융사·병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876년(고종 13)에 판중추부사로서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할 때 우리측 대표였던 신헌의 문집 『금당초고』에 실린 「대동방여도서(大東方輿圖序)」 등에서 김정호에 대한 부분적인 모습을 접할 수 있다.



김정호가 제작한  서울지도---- <수선전도(首善全圖)>

그의 업적은 대부분 전국지도와 전국지리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가 국내의 지도·지지 제작 특히 전국을 대상으로 한 지도·지지 제작에 특별한 관심과 의지를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산자 김정호의 친우이며, 19세기의 뛰어난 실학자인 혜강 최한기가 세계지도와 세계지지의 제작에 힘을 기울였던 것과 대비되며, 두 사람이 역할 분담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김정호가 제작한   전국지리지

 『동여도지(東輿圖志)』(1834∼1844),

『여도비지(輿圖備志)』(1853∼1856),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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