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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호 전투는 동경의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와 그의 심복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의 독단이 빚은 참사
중공군의 개입과 기후의 악화로 인해서 더이상의 추가작전이 무리인 상황에서 무모하게 "연말까지"끝낸다는 계획을 추진한 나머지 하마터면 미해병1사단 예하 연대들이 각개격파 당할뻔한 위기였습니다.
다행히 알몬드 장군의 계획을 못마땅하게 여긴 해병사단 지휘부가 "고의적으로" 진격속도를 늦추며 요충지에 병력과 보급품을 집적한 덕분에 돌이킬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미해병대는 "호랑이 굴"을 빠져나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직속상관의 명령에 충실히 따른 장진호 전투의 육군 보병7사단예하"맥클린 전투단"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었습니다.
상관의 무모한 작전을 너무 충실히 따른 나머지 너무 멀리 전개되어 결국 중공군의 공세를 정면으로 맞게 되었습니다.
맥클린 대령은 전투중 중공군을 미군으로 오인해 부상당한채 포로가 되었고(며칠후 사망), 지휘권을 인수한 페이스 중령 역시 별다른 재주가 없는지라 결국 "페이스 전투단(지휘관에 따라 이름이 바뀌었음) 은 철수중 중공군의 매복에 걸려서 장진호 북단에서 차량대열과 함께 거의 "학살"을 당했고 페이스 중령도 전사했다.
이 부대는 일부 잔존병이 얼어붙은 장진호를 돌파해 해병대와 합류한 것 이외에는 대부분 중공군에 의해 "깨끗하게" 확인사살 당했다.
결국 중장비를 넘기지 않고, 회수할 수 없는 시신을 해결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인 네이팜 공격이 미군에 의해 실시되어 "페이스 전투단"은 깨끗하게 "소각처리"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해병대는 흩어질뻔한 예하 연대들을 모아서 왔던 길을 돌파해 철수했고, 그와중에 중공군이 파괴한 하나뿐인 "다리"를 급조하는 기민함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흥남일대로 철수한 미해병대와
소수의 영국해병대, 미육군7사단은
한국군과 피난민 다수와 흥남에서 철수
이후 유엔군의 작전이 38선을 중심으로 전개되기에 지상군이 이곳에서 작전을 벌이는 일은 더이상 없게됩니다.
하지만, 해군의 차단작전을 계속되어서 해군 수상함대들이 기뢰제거작전과 해안포대와의 포격전, 물자집적소 공격 등의 작전을 계속 수행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한국해병대와 미해군 일부가 흥남과 원산 해안의 섬 일부를 장악해 작전기지로 운영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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