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양사

당의 반란

by 산골지기 2015. 10. 6.
728x90

 안녹산은 세 지역(평로, 하동, 범양)의 절도사를 맡아보았으며, 당 군사력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는 중앙의 권력을 잡고 있던 재상 양국충과 대립하였는데, 정부에게 모반의 의심을 받자 755년 반란을 일으켰다.

 

안녹산의 반란은 한때 당의 수도 장안까지 점령할 정도로 세력을 펼쳤다. 하지만 내부의 권력 다툼으로 안녹산이 살해되고, 당 정부가 반격에 나서며 난은 진압된다.

 

 

안ㆍ사의 난 이후 각 지역의 절도사들은 반독립적인 지위에 올랐으며, 당 정부는 수도 주변만을 다스리게 되었다. 또한, 농업 생산력 쇠퇴, 인구 감소, 토지 대장과 호적 등의 손실로 조ㆍ용ㆍ조가 폐지되고 양세법이 도입되는 등 당의 체제가 크게 흔들렸다.

 

 

황소의 난은 당 말기에 일어난 농민 반란이다(875~ 884).

 

 

 

 

안ㆍ사의 난 이후 중앙에서는 권력 다툼으로 정치가 어지러웠으며, 절도사 권한의 강화로 중앙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그리고 수탈이 심해지고 기근이 계속되며 백성의 불만이 높아졌다.

 

 

한편, 소금세가 높아지고, 소금 판매 상인들이 폭리를 취하자 소금 밀매가 활발해졌다. 이를 통해 세력을 키운 소금 밀매업자인 황소와 왕선지 등은 난을 일으켜 허난과 산둥 일대를 점령하고, 당의 수도인 장안을 점령하였다.

 

 

 

 

황소는 장안을 점령한 뒤 국호를 대제(大齊)라 하며 나라를 세웠으나, 당 정부의 반격으로 결국 난은 진압되었다. 황소의 난 이후 당은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으며, 23년 뒤 절도사인 주전충에 멸망한다 

 

 

측천무후는 당 고종의 황후로 중국에서 유일하게 여성으로 황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당 태종의 후궁이었으나 태종이 죽자 관습에 따라 출가하였다.

 

 이후 651년 고종의 후궁으로 입궁하였으며, 655년에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뒤에 690년 아들인 예종을 폐위시키고 황제가 되어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라 하였다.

 

측천무후는 황제가 된 뒤 중앙에서는 공포 정치를 펼쳤지만,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켜 무주지치(武周之治)’라 불릴 정도였으며, 이후 현종 때 당의 전성기의 밑바탕을 마련하였다.

 

말년에는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은 신하들이 횡포를 부리고, 측천무후가 병이 들자 아들인 중종이 황제로 복위하였다.

 

 

728x90
반응형

'동양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0) 2015.10.13
동남아 역사  (0) 2015.10.07
한의 전개  (0) 2015.10.05
쿠샨 왕조  (0) 2015.10.05
동남아 역사  (0) 201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