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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근대 동아시아 국제관계

by 산골지기 2015.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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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일본은 조공 관계를 통해 명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명 대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여 책이 대량으로 출판되었는데,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려는 국가들이 앞다투어 서적을 구입하였다.

 

특히, 조선은 경서와 문집을 많이 구입하여 집현전 학자들로 하여금 이를 바탕으로 옛 제도를 광범위하게 연구하게 하였다. 이때의 연구는 훈민정음 창제에 영향을 주었다. 명의 영락제는 몽골과 같은 대제국의 부활을 꿈꾸었다. 그는 거대한 자금성을 건설하

여 수도를 난징에서 베이징으로 옮기고, 다섯 차례나 만리장성을 넘어 몽골을 공격하였다. 또한, 대월의 탕롱(하노이)을 지배하였으며, 티베트를 간접적으로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정화로 하여금 수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와 인도양 일대를 항해하게 하여, 아프리카 동해안에까지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영락제가 몽골과의 전쟁 중에 병사한 이후, 명은 몽골의 위협과 침입에 시달려야 했다.

명에 쫓겨 북쪽으로 패주한 몽골은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지만, 15세기 초에 서북 몽골을 근거지로 하는 오이라트부가 세력을 회복하여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15세기 중반 오이라트부의 최대 판도는 장성 연변에서 카자흐스탄 남동부에까지 이르렀고, 명과의 전투에서 정통제를 생포하기도 하였다. 오이라트부가 내분에 의해 쇠퇴한 후에는 동부 몽골을 근거지로 하는 타타르부가 성장하였다.

 

 타타르부는 다얀 칸 때에 이르러 오이라트를 격퇴하고 몽골 지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이어 알탄 칸이 몽골을 통일한 후 명의 여러 지역을 침략하였으며, 16세기 중반에는 명군을 대파하고 베이징 성문까지 진격할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그러나 알탄 칸의 손자가 명에 투항하면서 명과의 화의가 이루어졌다.

14세기 중반부터 왜구가 창궐하여 한반도 일대를 침략하였다.

 

 

왜구는 일본 남북조 시대의 전쟁에 참여하였던 무장 세력과 해적들로 이루어졌는데, 이들은 부족한 식량 등을 구하고자 한반도에 침입하였다.

 

 

 왜구의 침입으로 고려는 연해의 농경지가

황폐화되어 경제적 타격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이를 격퇴하는 과정에서 최영, 이성계 같은 무장세력이 등장하여 정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16세기에는 왜구가 명의 해안에도 빈번하게 출몰하였다. 왜구에는 해적 외에도 명의 해금 정책을 어기고 밀무역을 하던 상인 집단도 포함되었다.

 

이들은 동중국해를 무대로 교역에 종사하는 한편, 저장, 푸젠, 광둥 등지에서 약탈을 자행하고 유구에까지 출몰하였다. 명은 왜구를 격퇴하는 데 국력을 크게 소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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