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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아시아의 교역망

by 산골지기 201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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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카라코룸에서 부터

 

 간선 도로를 따라 약 30km 간격으로

 

역참이 배치되었다.

 

 


 

역참 통행증인 패자는 몽골 군주가 파견한 사신이나 고관들이 차고 다니던 일종의 공식 통행증으로, 임무 수행의 신속성 여부, 소지자의 지위 고하에 따라 해청패(海靑牌),금패, 은패 등으로 나뉘었다.

 

현재까지 역참 통행증은 18개 정도 발견되었는데, 이 중 11개는 중국 영내에서, 나머지 7개 가운데 출처 미상의 1개를 제외한 6개는 모두 구소련 영내에서 발견되었다. 몽골은 마지막 까지 저항을 하던 남송을 멸망시킨 후에는 동서의 교통망인 바닷길까지 장악하였다.

 

원은 당시의 중요한 항구도시였던 항저우와 취안저우에 시박사를 설치하여 동남아시아와 인도양으로 항해하는 무역을 관리하였다.

 

그리하여 고려, 일본,대월, 동남아시아를 잇는 동아시아 교역망이 만들어졌다.

이 교역망은 동남아시아를 거쳐 페르시아 만에 이르는 인도양 교역망과 연결되었고, 다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아라비아 상인의 교역망과 지중해 교역망으로 연결되었다. 교역이 발달하자 단일 화폐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이에 원은 교초를 발행하여, 초기의 주요 화폐였던 은과 비단을 대신하게 하였다.

 

교초는 은과 교환할 수 있는 안정된 화폐였으므로,

 

몽골 제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되었다.

 

 

 

 교초의 남발은 경제적인 혼란을 가중 시키기도 하였다. 중국은 원래 동전을 주된 화폐로 사용하였는데, 동전은 무거워 고액의 광역 결제 수단으로서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몽골인들은 중국을 정복한 뒤 교초를 유일한 유통 수단으로 정하고 동전을 법적으로 금지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지폐에만  의존하는 화폐 정책을 시행하였다.

 

 


 

몽골 제국은 넓은 지역을 다스리기 위하여 제국 곳곳에

교통시설인 역참을 설치하였는데,

통행증을 가진 사람들은 역참에서

말과 마차, 식량 및 숙소를 제공받으며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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