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양사

8세기 아시아의 모습

by 산골지기 2015. 9. 24.
728x90

야마토 정권은 7세기 말에 일본이라는 국호와 천황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8세기에는 당의 수도 장안을 본떠 나라에 헤이조쿄, 교토에 헤이안쿄를 차례로 건설하고 궁성을 중심으로 화려한 귀족 문화와 불교 문화를 꽃피웠다.

만주에서는 고구려 유민을 중심으로 발해가 건국되었다. 발해는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당일본과의 교류를 확대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한 축이 되었다.

이제 고정된 영토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된 당, 신라, 일본, 발해 등은 안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지역을 통합하였으며, 밖으로는 대외 관계의 안정과 교역의 활성화, 문물교류를 위해 노력하였다.

 

세계의 여러 나라가 참여하여 치르는 국제전을 세계 대전이라고 한다.

 

그러면 동아시아 역사에는 이와 같은 세계 대전이 없었을까? 삼국 통일 전쟁 전, 당은 동돌궐, 고구려와 동아시아의 패권을 겨루고 있었으며, 신라와 백제는 한반도에서 서로 경쟁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은 여러 차례 고구려를 침공하였으나 실패하였고, 신라는 백제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삼국 통일 전쟁은 동돌궐 고구려 백제 왜의 연합으로 고립된 신라와, 고구려를 복속시켜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했던 당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멸망시키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신라당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하자

 왜는 지원군을 보냈지만 백강 전투에서

신라 당 연합군에 패하였다.

 

,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이 애초의 약속을 저버리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 하자,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과 연합하여 당과 대결하였다. 그런데 때마침 티베트인이 세운 토번이 당의 지원을 받던 토욕혼을 멸망시키고 비단길 지역으로 진격하였다. 이에 당군은 토번과의 전쟁을 위해 한반도에서 물러났고, 결국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와 같이 삼국 통일 전쟁은 여러 동아시아 국가들이 얽혀서 치룬 국제전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를 동아시아 대전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728x90
반응형

'동양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근대 동아시아의 전쟁  (0) 2015.09.24
근대 동양의 인구증가  (0) 2015.09.24
에도 시대  (0) 2015.09.24
석가모니  (0) 2015.09.23
중국인의 독특한 역사관념(의식)  (0) 201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