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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에도 시대

by 산골지기 2015.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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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반에 예수회의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일본에 진출한 이래, 일본에서는 크리스트교 포교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에도 막부는 17세기 초부터 크리스트교를 탄압하였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인들을 통해

의학, 천문학, 언어학 등이 전해져

서양의 과학과 문물을 연구하는 학문이

발달하였는데, 이를 난학이라고 한다.

 

프란시스코 사비에르가 일본에 내항한 후

 크리스트교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신도 수가

1600년경에는 30만 명, 1615년에는 50만 명에 달하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무역을 장려하고 이를 통해 재원을 확보하고자 처음에는 크리스

트교를 묵인하였다. 하지만 권력 기반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크리스트교에 대한 탄압을

본격화하였다. 1635년까지 무려 30만 명에 가까운 크리스트교도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이 시기 일본의 크리스트교 탄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후미에였다.

 


 

후미에는 십자가나 예수상을 새겨 놓고 크리스트교 신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밟게 한 목제 또는 금속제의 판으로, 에도 막부는 이를 이용하여 숨어 있는 크리스트교 신자들을 가려내었다.

 

유럽 문화와 접촉하면서 베트남에도 시계, 망원경, 무기 등이 전해졌다. 1734년에는 활판 인쇄가 시작되어 이전까지 중국에서 수입된 책의 판매가 금지되기도 하였다.

 

레뀌돈은 당시의 지식을 모아 50권 이상의 서적을 펴냈고, 레흐우짝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적합한 약의 처방이나 치료법을 집대성한의종심령이라는 의학 서적을 저술하였다. 레뀌돈은 대대로 과거 급제자를 배출, 조정에 출사한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였다.

 

1752년에 27세의 나이로 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간 후 한림원 학사, 중국 파견 사신 등 조정에서 크고 작은 여러 일들을 감당해왔다.

 

 그는 박학다식한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역사, 지리, 문학, 언어학,철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대월통사를 저술하였다.

근대 베트남에서는 17세기부터 예수회의 본격적인 포교 활동이 시작되었으나, 크리스트교의 세력이 커지면서 선교사 추방이나 처형 등의 탄압도 거세졌다.

 

하지만 1802년 응우옌 왕조의 성립을 도운 것을 계기로 마침내 크리스트교 포교의 자유를 얻게 되었다.

한편, 알렉상드르 드 로드 신부는 선교 활동을 목적으로 베트남어의 로마자 표기를 시도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베트남에서 사용하는 문자의 형성에 큰 기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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