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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592

석유와 배구 석유는 현대문명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자원이다. 석유가 가치를 발휘하기 이전에 서남아시아인들은 석유를 그냥 땅속에 있는 검은 덩어리로 여겼다. 석유자원의 가치가 입증이 되면서 세계 에너지의 주축이 되었고 산업화와 함께 가장 필수적인 자원으로 자리했다. 산업혁명의 아버지는 철이고 산업혁명의 어머지는 석탄이다. 20세기 이후 산업의 아버지는 계속 철이 지존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어머니는 석탄에서 석유로 바뀌었다. 미국의 경우 철을 바탕으로 카네기가 나왔고 석유를 바탕을 록펠러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배구단 중에도 석유를 테마로 하는 배구단이 있는데 호남정유였다. 호남정유는 실업배구의 지존으로 군림하면서 한국 배구의 대명사가 되었고 이후 LG정유로 바뀌었다가 현재 GS칼텍스로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 2015. 1. 6.
호남정유 호남정유와 GS칼텍스가 다른회사로 보기에는 좀 그러네요 호남정유가 망하고 새롭게 GS칼텍스가 들어선 것이 아니고 호남정유의 계통을 이어받는것 같다. 과거 어릴때 촌에 있다가 오랜만에 기차타러 가보면 제일 많이 눈에띄는 것이 호남정유라는 마크가 적힌 철도 수송 운반탱크였다. 산업의 불모지 호남에서 가장 먼저 공장이 설립된 곳은 여수인데 여수정유공장이 말 그대로 호남정유로 보면 되겠다. 이후 호남정유가 망했다기 보다는 운영의 변모를 격으면서 미국의 석유회사가 한국 석유산업에 관심을 가지면서 세브론의 자회사인 칼텍스사가 GS와 50%의 지분으로 GS 칼텍스를 설립하게 된다. 석유의 필요성을 절감한 우리나라는 인도네시아의 마두라 해저 전개발을 하게 된다. 마두라 유전개발은 경제성도 중요했지만 우리손으로 석유를 .. 2015. 1. 6.
정유 산업 우리나라의 석유산업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시작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이 되었다. 경제개발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석유에너지의 안정공급 없이는 경제개발의 성공적인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게 되고 , 국가경제의 기반을 다지고 , 경제개발에 필요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정유공장 건설을 최우선사업으로 여기게 된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2년후인 1964년 4월에 일일 3만5천배럴 규모로 국내 최초의 대한석유공사 울산 정유공장이 가동되면서 우리나라의 정유공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게된다. 어느정도의 규모를 갖춘 정유공장을 우리나라 자체의힘으로 건설하기는 무리인 상황에서 우리는 외국자본과의 협력을 모색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는 국 걸프사와의 협력을 체결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최초의 .. 2015. 1. 6.
석유재벌 1853년 록펠러는 가족과 함께 클리블랜드로 이주했다. 6년 후에는 자신의 최초의 기업체로서 건초, 곡물, 육류, 기타의 상품들을 취급하는 중개회사를 창설했다. 1860년대 초반 펜실베이니아 서부 지역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던 원유 생산의 상업적 잠재력을 감지하고 1863년 클리블랜드 근처에 처음으로 자신의 정유소를 세웠다. 2년 만에 이것은 그 지역에서 가장 큰 정유소가 되었고 그후부터 록펠러는 전적으로 석유사업에 전념했다. 1870년 록펠러와 몇몇 동료들은 오하이오의 스탠더드석유회사를 주식회사로 바꾸었다. 록펠러의 효율적인 경영으로 스탠더드는 번성을 하게되고 경쟁업체들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1872년에는 클리블랜드의 거의 모든 정유소들을 장악할 정도가 되었된다.. 스탠더드 회사는 철도 당국과 협상하여 .. 2014.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