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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중천축 국

by 산골지기 202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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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가 지은 왕오천축국전에서는 중천축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중천축 왕은 영토가 매우 넓고, 백성이 번성하다.

왕은 900마리의 코끼리를 소유하고, 다른 대수령(大首領)은 각각 200마리나 300마리의 코끼리를 소유한다. 왕이 늘 직접 군대를 이끌고 싸우는데, 다른 네 천축국과 항상 싸우면 중천축왕이 언제나 이겼다.

그 나라 법에는 스스로 코끼리나 군대가 적은 줄 알면 곧 화해를 청하여 해마다 세금을 보내고 서로 맞서 싸우고 죽이지 않는다. 의복과 언어, 풍속과 법률은 오천축국이 서로 비슷하다. 다만 남천축국의 시골 사람들의 말은 다르지만, 관리들의 말은 중천축국과 다르지 않다.

오천축국의 법에는 목에 칼을 씌우거나 몽둥이로 때리거나 감옥에 가두는 것이 없으니, 죄를 지은 자에게는 죄의 가볍고 무거움에 따라 벌금을 내게 하지 죽이는 일은 없다.

위로 국왕으로부터 아래로 서민에 이르기까지 돌아다니며 사냥하며 매를 날리고 사냥개를 내달리게 하는 등의 일을 보지 못했다. 길에 비록 도적이 많긴 하지만 물건만 빼앗고 곧 놓아주어 해치거나 죽이지 않는다.

만약 물건을 아끼다가는 곧 다치게 된다. 기후가 매우 따뜻하여 온갖 풀이 항상 푸르고 서리나 눈은 내리지 않는다.

음식은 멥쌀, 곡물, 빵, 보릿가루, 버터[蘇, ghrta], 젖[乳, ksīra], 요구르트[酪, dadhi] 등 뿐이고, 장(醬)은 없으나 소금은 있다. 모두 흙솥으로 밥을 지어 먹으며 무쇠솥 따위는 없다.

백성은 별도의 부역이나 세금을 내지 않고, 다만 땅에서 나는 생산에서 다섯 섬은 거두고 한 섬은 왕에게 바칠 뿐이다. 왕이 사람을 보내 운반해가고 땅 주인이 일부러 보내지 않는다. 이곳 백성들은 가난한 사람이 많고 부자가 적다. 왕이나 관리 집안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면직물 한 벌을 입고, 이밖의 사람들은 한 겹만 입으며, 가난한 사람들은 반 조각만 입는데, 여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왕이 관청에 앉으면 수령과 백성이 모두 와서 왕을 둘러싸고 사방에 앉는다. 각자 도리로 다투고 소송이 많아서 매우 어지럽고 시끄럽지만, 왕은 듣기만 하고 화를 내지는 않으며 느긋하게 “네가 옳고, 네가 틀렸다.”고 판결해주면 백성들은 왕의 한마디 말을 결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두 번 다시 말하지 않는다.

왕과 수령들은 삼보를 매우 공경하고 믿는다. 스님들을 마주할 때면 왕과 수령들은 땅에 앉지, 의자에 앉으려 하지 않는다.

왕과 수령들은 어디에 갔다 올 때 오고 가는 모든 곳에 자신의 의자를 가지고 따르게 하여 이르는 곳마다 그 의자에 앉고 다른 의자에는 앉지 않는다. 절과 궁궐은 모두 삼층으로 짓는데, 아래의 첫 번째 층은 창고로 쓰고 위의 두 층은 사람이 산다. 여러 대수령들의 집도 그러한데, 집은 모두 지붕이 평평하며 벽돌과 나무로 짓는다. 이 밖의 사람들은 모두 초가집으로, 중국의 맞배집과 비슷하게 지으며 단층집이다. 이 나라 산물은 면직물[氎布]과 코끼리, 말 등뿐이다.

이곳 땅에서는 금과 은이 나지 않아 모두 외국에서 들여온다. 또한 낙타, 노새, 나귀, 돼지 등의 가축도 기르지 않는다. 소는 모두 흰색인데, 만 마리 가운데 한 마리 정도가 붉은 색이거나 검은 색이다. 양과 말은 아주 적어 왕만이 양 200~300마리, 말 60~70필을 가지고 있다.

이 밖의 수령들과 백성들은 모두 가축을 기르지 않는다. 오직 소 기르는 것을 좋아하여, 소에서 젖[乳]과 크림[酪]과 버터[蘇]를 얻는다. 이 나라 사람들은 착해서 살생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시장이나 가게에서 짐승을 잡아 고기를 파는 곳을 보지 못했다.

이 중천축국은 대승과 소승이 함께 행해지고 있다. 중천축국 경내에 사대탑(四大塔)이 있는데, 강가강 북안에 세 개의 대탑이 있다. 첫째 탑은 슈라바스티[舍衛, Śrāvastī]국 급고독원(給孤獨園, Jetavana Anāthapindikārāma)에 있는데, 절도 있고 스님도 있는 것을 보았다.

둘째 탑은 바이샬리[毗耶離, Vaiśāli]성 암라(菴羅, Āmra)원에 있는데, 탑이 있는 것을 보았으나 절은 황폐해져서 스님이 없다. 셋째 탑은 카필라[迦毗羅, Kapila]국 즉 부처가 본래 태어난 성에 있는데, 무우수(無憂樹)는 보았으나 성은 이미 황폐해졌다. 탑은 있으나 스님은 없으며 백성도 없다.

이성은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숲이 황량하고 길에 도적이 많아 그 곳에 가서 예배드리려는 이들이 찾아가기 어려워 곧잘 헤매곤 한다. 넷째는 삼도보계탑(三道寶階塔)으로, 중천축왕이 사는 성에서 서쪽으로 7일 정도 간 거리의 두 강가강 사이에 있다.

부처께서 도리천(忉利天)에서 오실 때 삼도보계를 만들어 염부제(閻浮提) 땅으로 내려오신 곳이다. 왼쪽은 금, 오른쪽은 은, 가운데는 유리로 만들어졌다. 부처는 가운데 길로오시고, 범왕(梵王)이 왼쪽 길, 제석천(帝釋天)이 오른쪽 길에서 부처를 모시고 내려와서 이곳에 탑을 세웠다. 절도 있고 스님도 있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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