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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이승휴의 제왕운기

by 산골지기 2023.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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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는 삼척에 있는 천은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했습니다

 

이승휴는 충렬왕의 실정을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을 당하게 되고요

파직을 당한 후에 삼척에 있는 천은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면서 제왕운기를 저술했습니다

두타산의 천은사에서 저술한 제왕운기

 

제왕운기는 상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상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 제왕운기는 이승휴가 말년에 삼척 두타산의 천은사에서 저술하였습니다.

제왕운기
상하 2권 1책으로 구성
이승휴가 말년에 삼척 두타산의 천은사에서 저술
중국의 역사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대등하게 견주어 읊은 서시시

상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는 제왕운기는

상권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하권에서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다루었는 데요

중국의 역사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대등하게 견주어 읊은 서시시입니다.

중국의 역사와 우리 나라의 역사를 대등하게 견주어 읊은 서시시인 제왕운기는 7언절구와 5언절구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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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에 기록된 단군조선에 대한 내용을 우리말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에 누가 나라를 세워 세상을 열었는가?

석제(釋帝)의 자손으로 이름은 단군(檀君)이라네.()임금과 함께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 임금 때를 지나 하()나라 때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나라 무정(武丁) 8년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네.

나라를 다스린 지가 1,028년으로, 어찌 변화시켜 환인께 전할 것이 없었겠는가?

그 뒤 164년 만에 어진 사람이 다시 군신(君臣)관계를 다시 열었도다

이승휴는 단군에 대한 기록에서 단군이 은()나라 무정(武丁) 8

을미년에 아사달 산으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아사달산은 황해도 구월산을 말합니다.

세종실록지리지 평양조에도

단군이 황해도 구월산인 아사달로 들어가 산신이 되었다고 기록을 했습니다.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우리나라를 요동에 있는 별천지로 묘사를 했습니다

 


●제왕운기의 구성

제왕운기는 상권과 하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요

상권(上卷)은 중국의 신화시대인 삼황오제에서부터 원나라 시대까지의 역사를 적었습니다.

중국의 역사를 적은 제왕운기 상권은 중국의 역대 왕과 그 사적을 7언시로 적었고요 264구 1848자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의 하권은 우리 나라의 역사를 적었는 데요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려시대 이전과 고려시대로 나누었습니다.

고려시대이전의 역사를 다룬 1부는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인데요

단군으로부터 삼국시대,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7언시로 적었습니다.

하권의 1부는 264구 1848자로 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 하권의 2부인 본조군왕세손연대(本朝君王世孫年代)에서는

고려 태조로부터 충렬왕 당시까지의 역사를 적었는데요 5언시로 적는 가운데 152구 7160자로 되어 있습니다.

제왕운기의 하권
우리 나라의 역사를 기록
1부 동국군왕개국연대(東國君王開國年代)
2부 본조군왕세손연대(本朝君王世孫年代)

제왕운기에는 사이사이에 주가 있습니다.

제왕운기는 자주적인 역사관을 잘 내포하고 있고요

원나라 간섭기에 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중요한 책이었습니다.

이승휴는 중국이 우리나라를 소중화라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중국역사와 우리의 역사를 대등하게 기술한 것이

제왕운기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제왕운기는 진주목에서 처음으로 간행이 되었습니다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에 대해서도 잘 기록을 하였습니다

 

●제왕운기의 간행

제왕운기는 충렬왕 13년에 완성되었는 데요

완성한 후에 바로 간행되지 않고 9년 후에 진주목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진주목에서 처음으로 발간되었던 초간본은 현재 전해지지 않습니다.

제왕운기의 완성과 간행
제왕운기의 완성 충렬왕 13년에 완성
제왕운기의 간행 완성된지 9년 후에 진주목에서
처음으로 발간

♣제왕운기의 단군에 대한 기록

 

이승휴는 단군을 석제로 손자로 묘사를 했습니다

 

제왕운기에서는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인간의 몽이 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환웅의 손녀와 단수신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단군 입니다

 

 

제왕운기의 단군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의 기록과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제왕운기는 더욱더 주목이 되는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제왕운기의 단군에 대한 기록을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본기(本紀)』에서 말하기를 “상제(上帝) 환인(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었는데, 환웅(桓雄)이라고 하였다.

(환인이 환웅에게) 이르기를 내려가서 ‘삼위태백(三危太白)에 이르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고 하였다.

이에 환웅이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고

귀신 3000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정상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오니,

그를 일러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 하였다.


(단웅천왕은)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케 하여 남자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하였다.

(단군은) 조선(朝鮮) 지역에 웅거하여 왕이 되었으니,

시라(尸羅)고례(高禮)남옥저(南沃沮)와 북옥저(北沃沮)동부여(東夫餘)와 북부여(北夫餘)()와 맥()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다.

(단군은) 1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으니, 죽지 않기 때문이다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이 1038년을 다스리다가 아사달산(阿斯達山)에 들어가 신()이 되었다고 하였는데요

이 내용은 세종실록지리지의 내용과 유사 합니다.

제왕운기에서는 단군의 탄생과 관련하여 단웅천왕은 손녀로 하여금 약을 먹고 사람의 몸이 되게 하고 단수신(檀樹神)과 혼인케 하여 남자 아이를 낳았으니, 이름을 단군(檀君)이라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시라(尸羅)고례(高禮)남옥저(南沃沮)와 북옥저(北沃沮)동부여(東夫餘)와 북부여(北夫餘)()와 맥()이 모두 단군의 후손이라고 하였습니다.

시라(尸羅)는 신라로 볼수가 있고요 고례(高禮)는 고구려로 볼수가 있습니다

제왕운기는 우리역사에 대한 대서사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