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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대

신라 진평왕과 사냥

by 산골지기 2023.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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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평왕은 사냥을 매우 좋아하였는데요

진평왕의 사냥과 관련하여 동국통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신라에서 이찬(伊飡) 김후직(金后稷)을 병부령(兵部令)으로 삼았다.

26대왕인 진평왕

김후직은 지증왕(智證王)의 증손(曾孫)인데, 왕이 자못 사냥하기를 좋아하므로 김후직이 간()하기를, “옛날의 임금은 반드시 하루에 만기(萬幾, 임금이 보살피는 여러 가지 정무(政務)) 깊이 생각하고 멀리 염려하여 좌우의 올바른 선비에게 직간(直諫)을 받아들여, 힘써 부지런히 하여 감히 안일하게 즐김이 없은 연후에야 어진 정사가 순수하고 아름다워져서 국가를 보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날마다 광부(狂夫엽사(獵士)와 더불어 매와 개[鷹犬]로 사냥하는 것을 일삼아 꿩이나 토끼를 쫓아 산야(山野)를 달리면서 능히 스스로 중지하지 못하십니다.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말을 달려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한다.’ 하였고,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안으로 여색에 빠지거나 밖으로 사냥하는 일에 빠지거나, 한 가지만 여기에 있어도 망하지 아니함이 없다.’ 하였습니다.

진평왕릉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안으로는 마음을 방탕하게 하는 것이요 밖으로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니,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유념하소서.” 하였으나 왕이 따르지 않자, 또 절히 간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후에 김후직이 병들어 죽게 되자 그 세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남의 신하가 되어 능히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였다.

김후직의 무덤

왕이 놀고 즐기기를 멈추지 않아 망하는 데 이를까 두려우니,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

비록 죽더라도 임금의 뜻을 깨닫게 할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내가 죽거든 반드시 왕이 사냥하러 나가는 길 옆에 나를 묻도록 하라.” 하니, 그 아들이 그대로 따랐다.

다른 날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도중에서 음성이 들려 마치 왕은 가지 마소서.’ 하는 것 같았다. 왕이 돌아보고 물으니, 종자(從者)가 말하기를, “저것은 김후직의 무덤입니다.” 하고, 드디어 김후직이 죽을 때에 임하여 말한 것을 진술(陳述)하니, 왕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살아서 충성으로 간하고, 죽어서도 잊지 않으니, 나를 사랑함이 깊도다.

김후직의 무덤앞에 있는 안내문

 

만약 끝내 고치지 않는다면 무슨 얼굴로 지하(地下)에서 그대를 보겠는가?” 하고, 드디어 종신토록 다시는 사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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