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를 세운 왕건
고려를 세운 왕건은 송악지방 호족인 왕륭의 아들이었습니다.
왕건의 아버지인 왕융은 송악산 남쪽 기슭에서 살았는데
궁예(弓裔)가 군왕을 자칭하고 일어섰을 때 송악군의 사찬(沙粲)으로서 군졸을 이끌고
궁예의 휘하에 들어갔습니다
송악지방 호족인 왕륭은 인삼무역을 통하여 막대한 재력을 쌓았던 거상이었습니다.
당시 송악의 인삼은 품질이 매우 좋았기 때문에 중국으로 많이 수출이 되었습니다.
왕융은 고려가 세워진 후에는 세조로 추증이 되면서 고려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왕융은 고려가 세워진 후에 세조로 추증이 된 왕륭이 고려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다.
왕륭 |
송악지방 호족 |
고려가 세워진 후에 세조로 추증 |
●궁예에게 송악군을 바치고 귀부한 세조
왕건의 아버지인 왕융은 고려가 세워진 후에는 세조로 추증이 되게 됩니다.
왕건의 아버지인 세조가 궁예에게 송악군을 바치고 귀부한 것과 관련하여
고려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왕융 |
송악의 호족 |
왕건의 아버지 |
고려가 세워진 후에 세조로 추증 |
당시 송악군의 사찬(沙粲)으로 있던 세조가 송악군을 바치고 귀부하니
궁예가 크게 기뻐하며 금성태수(金城太守)로 삼았다. 세조가 궁예더러
,“대왕께서 조선(朝鮮)·숙신(肅愼)·변한(卞韓) 땅의 왕이 되고자 하신다면
먼저 송악군에 성을 쌓고 저의 장남을 성주로 삼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라고 설득하자 궁예가 그 말을 따라 태조에게 발어참성(勃禦塹城)을 쌓게 한 후
성주로 임명했다. 이 때 태조의 나이 20세였다.
왕건은 20세의 나이에 송악에 쌓은 발어참성(勃禦塹城)의 성주가 되게 됩니다.
●중부지방의 군현을 토벌한 태조
왕건의 아버지인 왕률이 궁예에게 귀부한 한 이후 왕건은 궁예의 명에 의하여 활발한 정복활동에 나서게 됩니다.
고려사에는 왕건이 중부지방의 군현을 토벌한 것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습니다.
궁예가 태조에게 명하여 광주(廣州 : 지금의 경기도 광주시)·충주(忠州 : 지금의 충청북도 충주시)·청주(靑州 :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및 당성군(唐城郡 :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괴양군(槐壤郡 : 지금의 충청북도 괴산군) 등의 군현을 토벌하게 했는데, 이를 다 평정하니 그 공으로 아찬(阿粲) 벼슬을 주었다.
왕건은 궁예의 명을 받고
경기도 광주와 충청북도 충주 충청북도 청주 경기도 남양주 충청북도 괴산등을 점령하게 됩니다
왕건은 중부지방의 중요한 군현들을 평정한 공으로 궁예로부터 아찬(阿粲) 벼슬을 받게 됩니다.
왕건이 평전한 중부지방의 중요한 군현 |
광주 |
충주 |
청주 |
당성군 |
괴양군 |
고려의 도읍 변천
고려는 철원에서 건국된 후 개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되는데요
918년에 철원에서 건국되었고 1년 후인 919년에 왕건의 터전인 개성으로 도읍을 옮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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