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왕립 천문기상대 역할을 하던 서운관의 이름을 관상감으로 바꾸었습니다.
이와 함께 세종은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천체를 관측 하도록 하였습니다.
천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달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일식 날에는 임금도 나와 천체 관측을 하였는데요 일식 시간이 잘못 계산되었을 경우에는
관측관리가 유배되기도 했습니다.
세종 시절에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 15분 늦게 시작되었는데요
이로 인해 세종은 역법도 중국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달력인 칠정산을 만든 것입니다.
세종은 즉위한 후 지금까지 사용해 온 중국의 모든 천문학 이론을 정리하고
개선하여 우리나라에 맞는 역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칠정산의 내편 |
원나라의 수시력과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을 서울의 위도에 맞게 수정 |
1442년에 완성 |
칠정산 내편(七政算 內篇)과 칠정산 외편(七政算 外篇)은 1442년에 완성되었습니다.
칠정산의 내편은 원나라의 수시력과 명나라의 대통력(大統曆)을 서울의 위도에 맞게 수정을 한 것입니다.
칠정산의 외편은 아라비아 천문역법인 회회력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입니다.
칠성산의 내편은 1년을 365.2일, 1달을 29.5305일로 정하고 있습니다.
‘칠정산’에서 칠정(七政)이란 해와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과 토성을 말합니다.
우리의 농업 기술을 정리한 농사직설
세종 시기에 편찬된 농사직설은 우리나라에서 직접 만든 최초의 농업 서적입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농서를 주로 활용하였지만
조선 세종때에는 우리의 풍토에 맞는 농업기술을 소개한 농사직설을 편찬하게 됩니다.
조선 초기의 농서 | |
농사직설 | 세종 시기에 정초등이 편찬 |
농서집요 | 태종 시기에 편찬 |
세종 시기에 정초등이 편찬한 농사직설은
우리의 전통적인 농업과 기술을 본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농서입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농업과 기술을 본격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농서인
농사직설이 나오기 전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농상집요가 많이 활용이 되었습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서 많이 활용이 되었던 농상집요는
중국 화북 지방의 농업 경험을 정리한 농서입니다.
농상집요 |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많이 활용 |
밭농사와 조 농사 중심으로 기술 |
중국 화북 지방의 농업 경험을 정리한 농서 |
농상집요는 주로 밭농사와 조 농사 중심으로 기술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중국의 화북지방과 달리 논농사가 발달하였기 때문에
우리의 농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우리 풍토에 맞는 독자적인 농법을 정리한 최초의 농서인 농사직설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농서로는 금양잡록이 있는데요
금양잡록은 경기 지방의 농법을 정리한 책으로 강희맹이 편찬을 하였습니다.
금양은 경기도 시흥의 과거 이름입니다.
금양잡록 |
경기 지방의 농법을 정리한 책 |
금양--- 경기도 시흥의 과거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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