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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이자겸의 사대외교

by 산골지기 2018.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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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겸의 사대외교

 

고려는 인종 43월에 개최된 백관회의에서 금에대한 사대외교를 결정하게된다.

백관회의의 결정에 따러서 동북9성은 여진족에게 돌려주게 되고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이자겸은 여진에 대한 사대외교를 펼치게 된것이다.

 

이자겸은 송나라가 문치주의로 국방이 약한 상황인데 반해서 금나라는 상승하는 매와 같다는 의견을 보이면서 여진에 대한 강경책 보다는 여진의 세력에 굴복하는 사대외교정책을 펼치게된다.

 

예종의 외척 이자겸--- 여진에 대한 사대외교 전개

 

당시 금에 대해서 사대외교로의 선회하는 과정에서는 실리외교를 추구한다는 주장을 표면적으로 내세웠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많이 작용을 하고 있다.

 

이자겸일파의 속셈은 대금강경책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왕권강화 정국을 맏아보자는 의도가 강하다.

 

이러한 사실은 윤관의 아들 이언이가 한 말인 '국왕께서도 칭신사대를 원치않는다'는 표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문벌귀족 세력의 득세가 결국은 국가의 자주의식까지 해치게 되면서 고려는 약자의 현실을 기정사실화 하게된 것이다.

 

이후 이러한 칭신사대정책은 서경파 세력인 정지상, 백수한, 묘청등에 의해서 또한번 강한 반발에 직면하게된다. 서경파 세력은 칭제건원은 신라 때와 고려 4대왕인 광종때에도 시행한바가 있다고 주장을 하면서 금에 대한 사대외교에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게된다.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국가적인 위상에 까지 영향을 주는 경우는 오늘날의 정치에서도 많이 볼수가 있다.

 

국가의 자주의식 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먼저 생각했던 당시 금나라와의 외교논쟁과 같은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에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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