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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만적의 난

by 산골지기 201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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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적의 난 일어났을 때는 최씨 무신정권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였는데요 당시 농민들의 삶이 어려워서 곳곳에서 농민반란이 일어났고요 천민들도 신분의 해방을 주장하면서 신분해방운동이 일어나던 시기였습니다.

만적은 최충헌의 노비였는데요 개경에서 천민들을 규합하여 난을 일으키려다가 측근의 밀고로 사전에 발각아 되면서 난 자체가 무산이 되었습니다.

무신정권 당시에 일어났던 대표적인 농민반란으로는 김사미와 효심의난이 있었습니다

김사미와 효심의 난이 진압된 지 3년 후인 명종26년(1196), 정권은 이의민에서 최충헌으로 넘어갔다. 이듬해는 최충헌에 의해서 명종이 폐위되고 신종이 즉위하는 등 조정은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의 민란은 그칠 줄을 몰랐고 특히 남부 지방에서는 대대적인 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종 2년(1199) 명주(강릉)에서 일어난 무리는 북진하여 울진을 함락하면서 남하하였고 경주에서 일어난 무리는 북진하여 중앙정부를 크게 긴장시켰다.

 

그러나 국왕 신종이 투항자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하사하여 난은 간신히 진정될 수 있었다. 이렇듯 최충헌 집권기 동안에는 신라나 고구려, 백제 부흥을 표방하고 나선 각 지역의 항거 운동과 함께 최씨 정권 또는 고려 조정에 반기를 든 민초들의 항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

최충헌이 정권을 잡은 후 가장 먼저 발생한 항거 운동은 바로 사노 만적과 미조이 등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신종 원년(1198) 5월에 일어난 만적의 난은 당대를 휩쓴 하극상의 풍조를 가장 잘 반영한 노예해방 운동이었다.

 

A컵이 C컵 되는 그날까지, 수술 없이 가슴 부자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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