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원은 고려의 영토 중
철령 이북 지역에는 쌍성총관부,
서경에는 동녕부,
제주에는 탐라총관부를 두어 직접 통치하였다.
아울러 일본 원정을 위한 물자와 군인 등을 고려에 요구하였다.
원은 일본 원정에 실패하였으나, 원정을 위해 설치하였던 정동행성을 그대로 두어 고려의 내정을 간섭하는 기구로 삼았다.
또한, 원은 고려에 공녀와 환관을 비롯한 금, 은, 베, 인삼, 매 등을 요구하였다.
이 때문에 고려 정부의 부담이 늘고 농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고려의 정치도 원의 압력과 친원 세력의 횡포 등으로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
원과 고려간의 양국의 교류는 고려 사회의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데 기여
원 간섭기 고려에는 몽골, 중국, 위구르 출신의 다양한 사람들이 왔으며, 많은 고려인이 유학 공부, 불교 교류, 이주 등의 이유로 원으로 건너갔다.
이러한 가운데 고려에 몽골식 변발과 복장, 음식 문화가 전해졌으며, 원에도 고려의 풍속이 퍼지게 되었다.
이러한 양국의 교류는 고려 사회의 다양성을 확대시키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