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학파에 따르면 "라는 낱말의 의미는 "마음의 통일을 이루는 것"으로 요가는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의 지멸(止滅)"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따라서 외부적인 속박을 떠남과 동시에 내부적인 마음의 동요를 가라앉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삼키아 학파와 요가 학파의 철학에 따르면, 마음의 작용(心作用 · 심작용)이란 푸루샤(神我 · Cosmic Spirit)가 프라크리티(自性 · Cosmic Substance)를 자기 자신으로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삼키아 학파에 따르면 이러한 동일시가 있으면 우주와 현상이 전개되고("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있는 상태") 이러한 동일시가 사라지면 우주와 현상이 해체되어 사라진다("주관과 객관의 구별이 없는 상태"). 이러한 우주적 전개와 해체의 과정을 설명하는 삼키아 학파의 철학을 개별적인 영혼에 적용한 것이 요가 학파의 철학이다.[18]
요가 학파에서는 요가 수행의 전제로 계율들, 즉 행하지 않아야 될 것들(① 야마)과 적극적으로 행하여야 할 것들(② 니야마)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 두 범주의 계율을 바탕으로 하는 상태에서 다음의 실천적인 수행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를 선택하여 좌정하되, 좌법(③ 아사나)에 쫓아 다리를 여미고 호흡(④ 프라나야마)을 가라앉게 하여 마음의 산란을 막아서, 5관(五官)을 제어(⑤ 프라챠하라)하여 5감(五感)의 유혹을 피하고, 다시 나아가 마음을 집중(⑥ 다라나와 ⑦ 디야나)시킨다.
그리하여 마침내 ⑧ 사마디(삼매 · 三昧 · 等持)에 도달한다.
요가 학파에 따르면 사마디에도 천심(淺深)의 구별이 있어서 사비칼파 사마디(Savikalpa samādhi · 유상삼매 · 有想三昧)와 니르비칼파 사마디(Nirvikalpa samādhi · 무상삼매 · 無想三昧)로 나뉜다. 전자는 대상의 의식을 수반하는 사마디이며, 또한 아직은 대상에 속박되어 대상에 의해 제어되고 있고 또 심작용(心作用)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비자 사마디(Savija samādhi · 유종자삼매 · 有種子三昧)라고도 일컫는다.
그러나 니르비칼파 사마디에 들어가면 이미 대상의식(對象意識)을 수반하지 않고 대상에 속박되지 않으며, 그 경지에 있어서는 심작용(心作用)의 여력마저도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에, 이것을 니르비자 사마디(Nirbija samādhi · 무종자삼매 · 無種子三昧)라고도 한다.
하타 요가--
곡예와 같은 무리한 육체적 수행을 행함
니르비칼파 사마디 또는 니르비자 사마디의 경지가 참된 요가이며 이 경지에서 푸루샤는 관조자로서 그 자체 속에 안주한다.
후대에는 이와 같이 ① 야마 · ② 니야마 · ③ 아사나 · ④ 프라나야마 · ⑤ 프라챠하라 · ⑥ 다라나 · ⑦ 디야나 · ⑧ 사마디의 여덟 단계로 구성된 라자 요가(Raja Yoga: 왕의 요가 또는 요가의 왕도) 대신에, 곡예와 같은 무리한 육체적 수행을 행하는 하타 요가의 실천도 성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