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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무신정권과 몽골의 침략

by 산골지기 2015.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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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중기에 무신이 정권을 잡고 몽골의 침략에 맞섰다.

 

13세기에 들어와 몽골이 통일 국가를 이루면서 동아시아 정세가 급격히 변하였

.

 

 

 

고려와 몽골의 관계는 우호적으로 출발하였다. 그런데 몽골 사신이 귀국길에 피살된 사건을 구실로 1231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였다.

 

 

개경 중심의 문벌 귀족 지배 체제가 강화되면서 문벌 귀족은 더욱 보수화되었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았다.

 

 

 

차별 대우를 받아 무신들과 각종 잡일에 동원되어 왔던 군인들의 불만도 커져 갔다.

 

마침내 1170(의종 24) 이의방, 정중부 무신들이 군인들의 지지를 받아 문신

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왕을 세웠다.

 

 

무신들이 집권 후에 보인 모습은

 문벌 귀족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신들은 중방을 통해 권력을 행사하면서

관직을 독점하고,재산을 축적하였다.

 

 

 

무신 정권 초기에는 권력 다툼으로

 

집권자가 자주 교체되었다.

 

 

 

 

 

30 동안 계속된 권력 다툼은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멈추었다.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만들어 권력 기반으로 삼고 도방을 두어 신변 경호와 함께 반대 세력을 감시 하였다. 그는‘봉사 10조’와 같은 개혁안을 제시하기도 하였지만, 권력 강화에 힘을 쏟았고 농민 봉기를 탄압하였다.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반대파들을 제거하기 위해 새롭게 설치한 기구이다. 이후 국정을 총괄하는 기구로 확대되어 무신 정권 내내 존속하였다.

 

 

최우는 정방을 설치해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인사 기준으로 학문적인 소양보다 행정 실무 능력을 중요시하였다.

 

이때 향리들이 활발하게 중앙 관리로 진출할 있었다. 한편, 삼별초를 설치하여 도방과 함께 정권 유지의 군사적 기반으로 삼았다.

 

 


 

 

 

강화를 맺은 최우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끝까지 항쟁할 것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정부군은 몽골군과의 싸움에 소극적이었고, 오히려 일반 백성이 주축이

되어 갖은 어려움 속에서 끝까지 항쟁을 계속하였다.

 

처인 부곡의 전투에서는 적장 살리타를 사살하는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다.

 

30 년에 걸친 전쟁으로 백성은 지치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대구 부인사 대장경 판목과 황룡사 9 목탑 문화유산도 불타 사라져 버렸다. 고려 정부 안에서도 강화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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