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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고려 무신 정권

by 산골지기 201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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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도감은 최충헌이 설치한

무신 정권의 최고 정치 기구로 교정소라고도 한다.

 


1209 4월 역리 3명이 최충헌을 제거하려고 거짓 공첩을 만들어 여러 절로 돌려 승려들을 소집하였는데, 귀법사의 승려가 이러한 사실을 최충헌에게 고발하였다. 최충헌은 흥국사의 남쪽 영은관에 임시로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관련자를 색출하였다.

 

그러나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계속 교정도감을 두어 최씨 정권의 반대세력을 제거하는 데 이용하였고, 서정(庶政) 감시,세정(稅政), 비위 규찰과 제반 명령 하달 등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의 정치 기구로 기능하였다.

 

교정도감의 최고 책임자인 교정별감은 무신 정권의 최고 집권자가 겸임하면서 국정을 독단하였다. 교정도감은 최씨 정권이 무너진 이후에도 존속되다가 1270(원종 11) 임유무가 피살되면서 무신정권이 끝나자 폐지되었다.

도방은 무신 정권 시대 집권자들의 사병 집단이다. 경대승이 정중부 일당을 제거한 후, 그의 신변을 호위하기 위하여 가동과 문객을 무장시켜 결사대를 조직하여 만들었다.

경대승의 병사(病死)로 잠시 동안 해체되었으나, 최충헌이 집권한 후에 신변 보호를 위해 1200년에 다시 부활시켰다. 최충헌은 3,000여 명을 선발하여 6번으로 편제하였고, 최항 때는 36번의 편제로 확대·강화되었다.

 

도방은 원종 때 몽골에 항복하고 문신중심의 왕정이 복고되면서 혁파되었다.

최충헌이 국왕에게 올린봉사 10의 내용을 보면, 그가 당시 고려 사회의 심각한 폐단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그런폐단을 없앨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최씨 정권은 수십 년 집권하는 동안 제대로 된 개혁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문신들로부터 빼앗은 권력과 경제력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부패와 수탈을 일삼았다. 심지어 많은 고려인들이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기 위해 항쟁하였던 대몽 항쟁기에도 이들의 부패와 수탈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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