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교와 청담 사상
중국의 종교인 도교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형성된 종교입니다.
고대 중국의 종교인 불교는 인도에서 도입된 외래종교인 반면에 도교는 순수하게 중국에서 형성된 민족종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인도에서 도입된 외래종교인 불교는 왕실의 후원과 귀족들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고대시대에 가장 강력한 종교교단이 되게 됩니다.
그러나 도교는 불교의 성행에 밀려서 상대적으로 위축이 되었지만 그래도 민간의 일부에서 꾸준하게 전승이 되었습니다.
초창기 도교 교단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종교로는 오두미교와 태평도가 있습니다.
오두미교와 태평도
----초창기 도교 교단의 선구적인 역할
후한시대에 장각이 만든 태평도는 황건적의 난을 일으켰다가 실패를 하게 됩니다.
●오두미교
초창기 도교의 일파인 오두미교는 한나라 말기에 발달한 종교교단입니다.
오두미교는 후한 말기 촉(蜀)나라에서 발생한 종교 교단인데요 천사도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오두미교는 이 종교를 믿는 신자가 입단하기 위해서는 5말의 쌀을 바친 것에 연유해서 생겼난 이름 입니다,
오두미교 |
한나라 말기에 발달한 종교교단 |
후한 말기 촉(蜀)나라에서 발생한 종교 교단 |
후한 말에 정치적 혼란 하에 처해져있던 백성들에게 종교적인 구원을 선전하였는데요
도덕적으로 선행을 하면 질병이 낫게 되고 영원히 죽지 않는 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행을 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중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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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미교의 특징
오두미교의 특징을 보면 오두미교에서는 병을 주술을 통해서 치료하였습니다.
오두미교의 종교 지도자는 병자에거 먼저 지난 죄를 고백하게 하였고요 주술을 통해서 치료하는 경우도 있고 노자의 도덕경을 외우게 하여 병을 고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오두미교의 특징은 신선사상인데요 인간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신선사상은
당시의 혼란 속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많은 호응을 받았습니다.
오두미교는 중국 전체에 퍼져서 농민 반란에 힘을 주기도 하였고요 귀족 계층에는 구세주 출현의 꿈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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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도
태평도는 후한말엽에 형성이 되어 민간으로 급속하게 전파가 되었던 종교입니다.
태평도를 만든 장각은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노장사상의 종교화
노장사상은 이후 종교적인 성향의 사상으로 발전을 하게 됩니다.
춘추 전국 시대에 형성된 도가사상은 종교적 형태로 발달하여 황로학파와 오두미교로 전개가 되게 됩니다.
춘추 전국 시대에 발달한 노장사상은 도가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종교적으로 변모를 하는데요 한나라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종교적 형태를 가지게 됩니다.
도가사상이 종교적인 모습을 띄게 되면서 형성된 것이 도교입니다.
노장사상의 종교화 |
황로학파 |
오두미교 |
도가사상과 도교는 서로 구분이 되는데요 도가사상은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기에 나타난 철학 사조를 말하는 것이고요 이 사상이 종교적인 형태를 갖추면서 도교가 되게 됩니다.
도교의 한 갈래인 오두미교는 민간에서 조직적인 교단이 형성이 되게 됩니다.
교단 형태를 갖춘 도교는 발달 과정에서 유가사상, 묵가사상 등과 결합하기도 했습니다..
●황로학파황로학파는 한나라 초기에 종교 교단의 형태를 갖추었습니다.
황로학파 |
황제와 노자를 받드는 종교 |
한나라 초기에 종교 교단 형성 |
유가에 대항하는 형태 |
도가와 진 법가적 요소가 혼합 |
황로학파에서 황로는 황제와 노자를 말하는데요 전설상의 임금인 황제와 노자를 숭상하고 받드는 종교입니다.
한나라 시대에 이르러 국가 공인 학문이 되는 가운데 유가에 대항하는 형태로 도가와 진나라 때의 법가적 요소가 혼합해서 생겨난 것이 황로학파입니다.
도가와 진나라 때의 법가적 요소가 혼합해서 생겨난 황로학파는 청정무위를 주장하였습니다.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많이 변형되는 가운데 형성된 사상이 황로학파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태평도
노장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최초의 교단은 태평도입니다.
노장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최초의 교단은 태평도는 중국에서 후한(後漢) 말기에 생겨난 교단입니다.
노장사상을 배경으로 하는 최초의 교단인 태평도는 후한말엽에 장각이 창시하였습니다.
태평도는 우길이 지은 저서인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를 경전으로 삼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우길이 지은 저서인 태평청령서(太平淸領書)를 경전으로 삼은 태평도는
태평세(太平世)가 초래 한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태평도에서는 먼저 신 앞에서 죄를 반성케 하고 참회하게 하였습니다. 그리노 영력이 있는 물을 마시게 한 다음 기도를 하였습니다.장각은 포교로 얻은 많은 신자를 얻었고요 신자들을 중심으로 하여 황허강 하류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장각의 죽음과 함께 급속히 세력이 쇠퇴하여 후한에게 진압되었습니다.
신자는 황색의 천을 표지로 삼았기 때문에 장각의 반란군을 황건적이라고 하였고요 황건적들이 일으킨 난을 황건의 난이라고 한다.●태평도와 농민반란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 장각은 화북에서 양자강 유역에 이르기까지 수십만의 신도를 확보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반란군으로 변모를 하면서 어수선한 사회에 불을 지르게 됩니다.
농민들의 불만을 기반으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황건적은 반란을 이끌던 장각이 병으로 사망하고 난후에는 정부군의 진압에 패배하게 됩니다.
장각이 만든 결사인 태평도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도교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장각
주술로 병을 치료하여 빈민의 지지를 얻음,
만인이 부유하고 영화로운 태평 시대를 건설하자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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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사상
청담사상은 인위적인 유교 예절 규범을 부정하고 규범대신 속세를 떠나 자연으로 되돌아가기를 추구한 사상입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유행했던 청담사상은 도가사상의 영향을 받아 생겨났는데요 청담사상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죽림칠현이 있습니다.
위진 시대는 정치가 불안정하였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자칫하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또 위진시대는 관료들의 횡포도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대부들 사이에는 혼탁한 속세를 등지고 자연에 은거하여 노장사상에 심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청담론자들은 노장사상을 중시하는 가운데 고상한 이야기를 하면서 세상을 보내었습니다.
청담사상을 강조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죽림칠현이 있습니다.
청담사상을 강조한 죽림칠현들은 대나무 숲에 은거하여 아침부터 밤까지 술에 취한 채 세상의 명분과 이해관계를 등지고 살았습니다.
이들은 정신의 자유 경지를 주장하였고요 한 노장사상에 심취하여 유학의 인위적인 도덕에 반대 했습니다.
청담사상을 강조한 죽림칠현들은 세속적 가치를 초월한 철학적이고 예술적인 사고를 중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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