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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중국사

무위(武韋)의 화(禍)

by 산골지기 2023.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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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의 아들 이융기(李隆基)가 무후의 딸인 태평 공주(太平公主)와 연합하여

현무문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위후를 죽이고(710) 예종을 다시 옹립하였다.

그러나 태평 공주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재상은 모두 그녀의 추천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712년에 예종은 그 아들 이융기에게 황제를 계승하게 하여 현종(玄宗)이 되었다.

예종의 아들 이융기

당나라의 현종

 

현종은 금군(禁軍)을 동원하여 태평 공주와 그 일파를 죽여 이른바 '여화(女禍)'를 마감하였다.

이처럼 무후와 위후의 정권 장악을 가리켜 '무위(武韋)의 화(禍)'라고 칭한다.

당나라의 여황제 측천무후

 

이는 유가적 입장에서 쓰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집정 기간 당초(唐初)에 확립되었던 국가의 기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당나라 현종
왕이 되기전 현무문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위후를 죽이고(710) 예종을 다시 옹립

미모까지 겸비한 측천무후

무후는 대신들에게 상을 남발하고, 위후는 매관매직까지 하여 관리의 수준은 낮아졌으며,

관리의 탐오와 부정이 횡행하였다.

영화속의 측천무후

그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관리도 많아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끼쳤다.

현종

금군(禁軍)을 동원하여 태평 공주와 그 일파를 제거

'여화(女禍)'를 마감


측천무후 어릴적 이름은 무미랑이라고 합니다.

나중에 황제로 즉위하면서 무조(武曌)로 개명합니다.


중국 역사상 3대 악녀로 불리는 여태후, 측천무후 및 서태후는

모두 황후들로서 자신의 반대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황제를 능가하는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세 황후 중 측천무후는 스스로 황제로까지 즉위하여 통치한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다.

그는 공포정치를 했다는 비난으로 악녀로 불리지만 동시에 민생을 잘 보살펴

나라를 훌륭히 다스린 황제라는 칭송도 같이 받고 있다.

[기고] 당나라 측천무후의 리더십과 핼러윈 참사 (yeongnam.com)

 

[기고] 당나라 측천무후의 리더십과 핼러윈 참사

중국 역사상 3대 악녀로 불리는 여태후, 측천무후 및 서태후는 모두 황후들로서 자신의 반대파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황제를 능가하는 절대권력을 휘둘렀다. 세 황후 중 측천무후는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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