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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인물

한명회

by 산골지기 2017.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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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회는   조선  초기에  수양  대군이   세조로 등극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게 됩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그 때문에 과거에 번번이 실패해 38세가 되던 1452년에야 겨우 문음으로 경덕궁직이 되었다.

 1456년 사육신 등의 단종 복위 운동을 사전에 적발하여 좌절시키고, 사육신과 관련자들의 처벌에 가담하였다.

세조의 최측근이자 책사로, 세조로부터 나의 장량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수양대군의 책사로 계유정난을 주도하여 수충위사협책정난공신(輸忠衛社協策靖難功臣)이 되고, 수양대군을 왕으로 즉위시키는 데 기여하여 동덕좌익공신(同德左翼功臣)이 되었다.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여진족의 토벌과 북방의 수비를 견고하게 하는데 공을 세웠다. 1466년과 1469년~1471년, 1474년~1475년 세 번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했으며 1457년 상당군(上黨君)에 봉군되고 1461년 진봉하여 상당부원군이 되었다. 만년에는 권신이자 외척으로서 정권을 장악하였으나 명나라 사신을 사사로이 접대한 일로 삭탈당하였다. 그러나 후일 종묘 세조실의 배향공신이 되었다.

오가작통법과 면리제(面里制)를 창시한 인물이며, 그가 만든 행정제도인 면리제는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한말의 불교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은 그의 친아우인 한명진의 후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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