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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

한·독 차관협정

by 산골지기 2016.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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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2월 13일 한·독 차관협정(韓獨借款協定), 1962년 3월 15일 한·독 경제협력의정서, 1963년 2월 14일 한·독 경제고문단 설치에 관한 협정 등이 체결되어 경제협력 관계가 강화되었다.

 1963년 12월 22일, 123명의 한국 광부 제1진이

 서독 뒤셀도르프 공항에 도착하여,

주서독 최덕신 대사 등의 환영을 받았다.

 

이어 대통령 박정희는 독일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1964년 12월 6일 독일을 공식 방문하였다.

에르하르트 수상을 면담할 때, 그는 박정희의 손을 잡고 한국에 지원을 약속했다.[19] 이것은 한국의 국가 원수로서는 최초의 유럽 방문으로서, 이 방문을 통한 양국 정상회담에서는 한·독 양국간에 우호와 협조를 증진시키고, 국토가 분단된 공동운명체로서의 유대의식을 재확인하며, 공동목표의 성취를 위해서 동일보조를 취한다는 데 합의를 보았다.

또한 박대통령의 방독 중인 12월 7일에는 한·독 경제협력협정이 체결되어 1억 5,900만 마르크 규모의 차관을 공여(供與)받았다.

박대통령의 방문 중,

에르하르트는 ‘라일강의 기적’을

예로 들며 고속도로와 제철산업, 자동차산업, 정유산업

, 조선산업 등을 할 것과‘한·일협정’을 맺을 것도 자문하였다.

 

1965년에는 MRO차관 1,500만 마르크, 통신시설의 확장을 위한 재정차관(財政借款) 1,900만 마르크를 제공받고, 한·독 실무자 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하여 양국경제관계의 전반을 협의하였다.

1966년에는 효성물산 나일론사(絲) 공장차관 832만 마르크와 영남화력발전 차관 8,800만 마르크가 도입되었다.

1967년 3월 2일에는 박대통령의 초청으로 뤼브케 서독 대통령이 방한(訪韓), 3월 6일 국토통일을 위한 긴밀한 협력, 한국의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대한 지원, 독일 기업의 대한투자(對韓投資) 장려, 제2 영남화력 발전소·낙농(酪農) 시범농장·부산 직업학교·괴테회관의 설립 등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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