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신문은 독립협회운동의 한 축을 이루었던 개신유학자층을 주대상으로 하여 1898년 9월 5일 창간한 국한문 혼용 신문이다.
황성신문은 국민계몽에 큰 기여를 하였고, 일본의 침략에 저항하는 저항언론으로서의 명성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은 러일전쟁 초기에 대외중립을 선언한 한국을 일본편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유리하게 진행시키고 한국 침략을 본격화하기 위해 강제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였는데, 이를 황성신문이 보도하였다가 기사를 삭제당했다.
이에 저항정신을 살리고 국민에게 일제의 탄압을 간접적으로 전하기 위해 활자를 거꾸로 인쇄한 이른바 ‘벽돌신문’을(활자의 뒤쪽 네모진 모습만 인쇄됨) 발행하였다.
일본의 본격적 침략인 '을사늑약'(乙巳勒約 - 을사조약을 강제로 맺었다는 뜻)에 대한 비분을 장지연이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오늘 목놓아 통곡한다)이라는 사설로 국민에게 알리자 집행진이 모두 체포되고 정간당하였다(1905. 11.20).
그 후에도 일제 강점이 진행되는 동안 민족의식 고취와 대일 비판의 자세는 지속되었다.
창간 당시 사장은 남궁억(南宮億), 주필은 장지연이었으며, 지금의 세종로 네거리 기념비전 자리에 사옥을 두고 있었다.
이후 황성신문은 1902년 9월 지금의 소공동 조선호텔 동편 삼화빌딩 근처로 사옥을 이전했다가,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자리를 거쳐 1904년 8월 종로 백목전 뒷골목 전 면주전 도가(현 영풍빌딩 북쪽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황성신문은 1910년 폐간당할 때까지 이곳에 사옥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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