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과 교통이 발달하면서 먼 지역의 소식도 신문·잡지 등을 통해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최초의 한글신문은 독립신문이다.
1884년의 갑신정변 때 중단되었던 우편 업무도
1895년의 을미개혁으로 다시 시작되었다.
한편, 한성과 개항장을 중심으로 서양식 병원이 세워지면서 서양 의술이 보급되고 위생 관념도 점차 높아졌다.
새로운 문물이 수용되면서 의식주 생활과 문화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관리와 군인이 서양식 옷을 입기 시작하고 양복을 입는 일반인도 점차 늘어났다. 양복의 영향을 받아 한복도 간편하게 바뀌어갔다.
또한, 여성은 거리에 나갈 때 얼굴을 가렸던 장옷을 벗었으며 양장을 하기도 하였다. 단발령으로 머리 모양도 바뀌고 이발사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났다.
이 시기 다양한 외국의 음식도 유행하였다.서양 음식인 과자나 빵, 케이크를 먹고, 커피나 홍차도 즐겨 마시게 되었다.
또한, 호떡,만두 등 중국 음식과 우동, 초밥 등 일본 음식을 파는 음식점도 많아졌다. 미국 공사 알렌은 1905년 5월 28일 경부선 철도 개통식 축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철도는 민중에게 시간을 엄수할 것을 가르치므로 문명적 지도자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이처럼 철도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새로운 변화를가져 왔지만, 동시에 외세의 침략 기반이 되어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
철도의 건설은 근대 문명 형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철도를 통해 전국 어디서나 거의 동시에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고, 일정한 시간표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근대적 시간 개념 형성에도 일조하였다.
또한, 철도 요금에는 신분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평등 의식의 확산에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철도는 일제의 침략 정책에 이용되었다.
일제는 철도 부설을 핑계로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고 강제 노동에 동원하는 등 민중에게 고통을 안겼다.
또한, 철도를 러·일 전쟁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수탈한 물자를 나르는 도구로 이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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