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가 아랍인 중심 정책을 펼친 것과 달리 이슬람교를 강조하여 다양한 민족과 인종을 포용하는 이슬람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페르시아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동서 교역에 힘썼다. 수도인 바그다드는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아바스 왕조는 9세기 이후 쇠퇴하여 칼리프의 정치적 권한이 약해지고, 명목상의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1258년 훌라구에게 수도인 바그다드가 점령되며 멸망한다.
탈라스 전투는 751년 당과 아바스 왕조
사이에 일어난 전투이다.
당은 고구려 출신의 고선지를 파견하여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진출하였다.
이에 반발한 타슈켄트 지역의 왕은 아바스 왕조에 지원을 요청하였다. 당과 아바스 왕조의 군대는 탈라스 강 유역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토착민이 아바스 왕조에 협조하며 당은 크게 패하였다.
전쟁으로 많은 당의 군사가 아바스 왕조의 포로가 되었으며, 이 중 종이 기술자를 통해 제지법이 이슬람 세계에 전파되었다.
고선지는 고구려 유민 출신의 당 장수로,
아버지는 고구려 출신의 당 장수인 고사계이다.
20세에 장군으로 등용되었다.
여러 차례 중앙아시아로 진출하여 티베트의 군대를 격파하고 72개국의 항복을 받는 등 당이 중앙아시아에 세력을 넓히는 데 공헌하였으나, 탈라스 전투에서 패배한다.
이후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토벌군의 부원수가 되었다. 수도인 장안을 공격해 온 안녹산의 군대를 막는 데 성공하였으나, 허락 없이 함부로 군대를 이동하였다는 모함을 받고 처형되었다.
고선지가 처형된 뒤 당은 안녹산의 군대에 장안을 잃는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은 명예 살인이나 히잡 착용 등의 여러 가지 차별을 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차별의 원인은 이슬람교 자체가 아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에서는 인격적으로 남녀가 평등하지만,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차별이 나타나는 이유는 각 지역의 여성 차별의 풍습이 이슬람교와 결합하며 나타난 것이다. 아프리카 북부의 투아레그족의 경우에는 이슬람교를 믿지만 여성의 지위가 상당히 높아 모계 중심 사회를 이루고 있으며, 이슬람교를 믿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의 국가에서는 여성이 정부 수반을 맡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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