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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106

태백산 부석사, 부석사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은행나무 길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부석사를 대표하는 은행나무 숲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가을 햇살처럼 부서진다. 입구에서부터 일주문으로 가는 길에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가 이어져 그야말로 가을 정취가 절로 난다. 마치 극락의 세계로 통하는 길처럼 절집으로 오르는 길은 황금빛 은행나무 일색이다. 일주문을 지나니 천왕문 너머로 가파른 계단길이 이어진다. 부석사는 불교 교리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했다는 사찰이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가 안동의 봉정사에 그 이름을 내주었다 범종루와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까지 108계단을 올라야 극락의 세계로 들 수 있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꽤나 가파른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다시 멈춰서기를 반복한다... 2015. 8. 31.
영주선비촌 영주선비촌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자 사적 제 55 호인 소수서원의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옛 선비정신을 계승하고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으로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을 체험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는 곳이고 함축적으로는 충효, 교육, 전통이란 세 단어가 떠오르는 곳이 바로 영주선비촌이다. 선비촌은 수신제가, 입신양명, 우도불우빈, 거무구안, 저자거리의 총 5개 권역으로 이뤄져 있다. ​ 영주선비촌의 입구로 들어서면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이자 조선의 개국공신인 정도전의 시문집인 삼봉집, 영조50년인 1774년 정조의 세손시절에 지은 주자회손(朱子會選), 그리고 세종16년인 1434년에 장영실, 김조, 이천 등이 제작하여 시(時)·경(更)·점(點)에 맞추어 종과 북·.. 2015. 8. 29.
신나무골 신자들이 나무 아래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신나무골'은 대구에서 서북 방행으로 2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신나무골 성지에는 경신박해때 순교했다고 알려진 이선이 엘리사벳 묘역이 있고, 대구 지역 첫 본당 터와 엘리사벳의 집(예수성심시녀회 은퇴 수녀들의 거처)이 있다. 원래 이선이의 유해는 한티에서 순교한 뒤 선산에 모셨다가 신나무골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1984년 이곳 신나무골에 이장한 것이다. ​ 본당 터 안에는 로베르(김보록)신부의 흉상, 사제관과 과거 선교사들의 사진과 유물, 공소가 있다. 이 마을에 처음 신자들이 산것은 1815년 을해박해 때로 추츨된다. 교우촌이 형성된 이후 샤스당 신부가 방문한 것으로 추측되며, 다블뤼 주교와 최양업 신부오 리델​신부가 사목 활동을 했다.. 2015. 8. 29.
대구 대교구 신나무골 성지​ ​ 신나무골 성지는 칠곡군 지천면 연화리에 위치하고 있다.​ ----신자들이 나무 아래 움막을 짓고 살았다고 하여 이름 지어진 신나무골 성지---- 경신박해 때에 한티에서 순교한 이선이 엘리사벳의 묘와 집이 있고, 대구 지역의 첫 본당 터와 연화리 피정의 집이 있다. 이선이 엘리사벳은 남편 배정모와 세 아들과 한티로 박해를 피해 갔으나 잡혔다. 남편 배정모는 배교를 하였다. 그러나 이선이 엘리사벳(42세)과 큰아들 배도령 스테파노(16세)는 "죽어도 성교(聖敎)를 믿겠소" 하여 작두에 목이 잘려 순교했다. 이선이의 시신은 남편이 선산에 모셨다가 1984년 선교 200주년에 신나무골 성역화 작업으로 이장하여 묘역을 정비하였다. ​로베르 신부는 1885년 후반 신나무골에 사제관을 지어 정착했는데, 이 시점을.. 2015.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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