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은 세종이 집현전 학사인 정인지·성삼문·신숙주 등의 도움으로 1443년에 창제해서
세종 28년인 1446년에 반포를 하였습니다,
조선의 제4대 임금 세종은 우리나라의 글인 훈민정음을 창제하여
말과 글이 하나 된 풍요로운 세상을 열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기관은 집현전인데요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의 집현전 학사는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의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었습니다.
집현전 학사 |
정인지 |
성삼문 |
박팽년 |
신숙주 |
●허균과 최세진
조선시대에 한글문학 확산에 이바지한 인물로는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쓴 허균과
한글로 외국어를 가르친 역관 최세진을 들수가 있습니다.
홍길동전 |
최초의 한글소설 |
최세진은 조선 연산군과 중종때 활동한 어문학자이자 당대 최고의 중국어 연구의 대가였는데요 중국어에 능통하여 외교 문서를 도맡아 처리하였으며 사신의 내방에 중요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어에 능통하여 외교 문서를 도맡아 처리하였던 최세진은 훈몽자회를 편찬하고 이책에 한글의 자모를 표기하였습니다.
최세진의 저서에는 훈몽자회외에 사성통해와 이문집람, 언해효경등이 있습니다.
최세진의 저서 |
훈몽자회 |
사성통해 |
이문집람 |
언해효경 |
●일제강점기의 한글
한글은 특히 일제강점기에 우리 겨레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었는데요 일제 강점기에 한글 교육과 보급에 힘쓴 인물로는 주시경과 윤동주, 방정환등이 있습니다.
개화기의 국어학자인 주시경은 우리말과 한글의 전문적 이론 연구와 후진 양성으로 한글의 대중화와 근대화에 개척자 역할을 하였는데요 황해도 봉산 출생으로 아버지는 주면석입니다.
방정환은 한글로 미래세대인 어린이의 교육에 이바지한 인물인데요 어린이날을 제정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방정환과 관련한 내용은 초창기 초등학교의 교과서에서도 잘 나와 있습니다.
방정환은 천도교도 이면서 색동회에서 활약을 하는 가운데 어린이날을 제정 하였습니다.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는 1931년 12월에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인데요 오늘날 한글학회의 전신입니다.
조선어학회의 처음 명칭은 조선어연구회였는데요
주요 회원으로는 장지영을 비롯하여 김윤경·이윤재·이극로·최현배·이병기 등이 있습니다.
조선어학회는 기관지 한글을 발간했습니다.
조선어학회의 회원 |
장지영 |
김윤경 |
이윤재 |
이극로 |
최현배 |
이병기 |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사전 편찬사업도 전개를 하였습니다.
조선어학회는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에 착수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출판하지 못했는데요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발표했습니다.
1942년 10월에 일어난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회원 30여 명이 일제에 의해 검거가 되었지만 1949년 한글학회로 다시 개칭하여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한글학회는 조선어학회가 29년간 펼쳤던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을 이어받아 1957년에 6권에 달하는 조선어 큰사전을 완간했습니다
●근대와 현대의 한글 관련 인물
근대에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으로는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헐버트가 있습니다.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 헐버트는 첫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저술하였는데요 1889년에 헐버트는 사민필지를 통해 어린이들의 시야를 세계로 넓히게 됩니다.
‘한글을 사랑한 외국인’ 헐버트는 고종을 도와서 정치적으로 많은 활약을 하게 됩니다.
●한글의 저변을 넓힌 분들
한글의 저변을 넓힌 분들로는 박두성을 비롯하여 공병우와 최정호등이 있습니다.
한글의 저변을 넓힌 박두성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만들어 ‘시각 장애인들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인물인데요 박두성외에 할글의 저변을 넓힌 인물로는 공병우가 있습니다.
공병우는 안과의사이면서 한글 세벌식 타자기 개발을 통해 한글 기계화와 정보화를 이끈 인물입니다.
이외에 최정호는 명조체ㆍ고딕체 등 한글 글꼴의 원형을 만든 인물입니다.
●현대시조작가 이병기
현대시조작가 이병기도 한글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가람 이병기는 국문학자이며 시조시인이었는데요 관립한성사범학교에 다니던 중 조선어 강습원에서 주시경에게 조선어 문법을 배웠습니다.
이병기는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국어국문학에 관한 문헌을 수집하는 하였고요 시조를 중심으로 시가문학을 연구하고 창작하였습니다.
현대시조작가 이병기가 수집한 서책은 뒷날 방대한 장서를 이루었고요 말년에 서울대학교에 기증하여 중앙도서관에 ‘가람문고’가 설치되었습니다.
현대시조작가 이병기는 권덕규 등과 함께 조선어문연구회를 조직하는 한편 , 1926년 ‘시조회’를 발기하였습니다.
이병기가 시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시조부흥론이 일기 시작한 1924년 무렵부터였습니다.
시조의 혁신을 강조한 이병기는 시조는 혁신하자를 비롯한 시조론을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이병기는 시조와 현대시를 동질로 보았습니다.
이병기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러야 했는데요 옥중 작품인 홍원저조 등에서 그는 이전까지의 관조적 시선에서 벗어나 사회와 개인의 갈등과 현실의 억압등을 다루었습니다.
이병기는 시조 창작뿐만 아니라 국문학 연구와 서지작업에서도 큰 공적을 남겼는데요 이병기는 한중록과 인현왕후전, 춘향가를 비롯한 판소리들을 발굴하였습니다.
● 주시경
현대 국어에 있어서 가장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는 주시경이 있습니다.
주시경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주시경은 배재학당에 다니던 중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에게 발탁이 되게 됩니다.
서재필에게 발탁이된 주시경은 독립신문사에서 일하게 됩니다.
주시경은 국어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서 후진 양성에 힘썼는데요
조선어학회를 만든 다수의 학자들이 주시경의 제자였습니다.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가 설립한 배재학당에서 공부를 하였던 주시경의 대표적 저술로는
국어문법과 말의 소리가 있습니다.
● 시조부흥론
일제 강점기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결성되자
최남선과 이광수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은 이에 대항을 하면서 시조 부흥론을 전개하였습니다.
최남선은 시조를 통해서 국민문학의 정신을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요
최남선에 이어서 이병기는 시조에 관하여와 같은 시조론으로 시조의 민족 문학적 의의를 재평가하였습니다.
시조 부흥 운동은 최초의 신체시를 지은 최남선을 비롯하여 이광수·정인보 등에 의하여 주도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