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달력 칠정산은 .
내편과 외편으로 되어 있는데,
중국 원나라의 역법과 명나라의 역법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꾸민 것입니다
세종은 고려 시대부터 왕립 천문기상대 역할을 하던 서운관의 이름을 관상감으로 바꾸고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별자리를 비롯하여
일출과 일몰, 일식과 월식, 혜성과 행성의 운행을 관찰토록 했습니다.
간의대는 조선시대의 천문대인데요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올려 놓았다고 하여
간의대라고 했습니다.
간의대 |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올려 놓았던 건물 |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별자리를 관측 |
조선은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여 왕립(王立) 중앙천문기상대로서 서운관을 두었고
그 관측시설로 간의대를 설립하였습니다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簡儀)를 올려 놓았던 건물은 지금은 없는데요ㅛ
조선시대의 천문대인 간의대는 다음과 같이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
서운관은 태복감·사천대·사천감·관후서 등으로 불리었습니다.
이후 1308년 고려 충선왕이 즉위하면서 처음 설치되었고요
사천감과 태사국으로 분리되고 통합되기를 반복하다 1372년 병합하여 서운관이 되게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고려의 관제를 그대로 이어 서운관으로 부르다가 세조때에 관상감으로 고쳤습니다.
서운관은 관측 시설로 개성에 첨성대를 두고 있었으며,
일식과 월식, 5행성의 움직임, 혜성과 유성의 출현 등을 관찰하였습니다.
서운관의 관원들은 매일 밤 5명씩 근무하며 간의대 위에서 천문을 관측했습니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이 관청은 주로 천문·재상·역일·추택 등의 일을 맡았다고 합니다.
서운관의 관측 시설로 간의대가 있습니다.
서운관의 관원 |
매일 밤 5명씩 근무하며 간의대 위에서 천문을 관측 |
천문현상을 관측했다는 기록은 실록에 남아 잘 남아 있습니다.
혼천의는 태양 , 달 , 오행성인 수성 , 금성 ,화성 , 목성 ,토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혼천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기후를 예측하기 위한 천문 관측에 사용되어 왔습니다.
혼천의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인 히파르코스,
에라토스테네스와 관련된 기록인데요 히파르코스는 4개의 고리가 달린 혼천의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에라스토테네스는 황도의 경사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혼천의를 사용하였습니다.
혼천의 |
태양 , 달 , 오행성인 수성 , 금성 ,화성 , 목성 ,토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 |
태양 , 달 , 오행성(수성 , 금성 ,화성 , 목성 ,토성)의 위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었던
혼천의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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