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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실/지리

배론성지

by 산골지기 2018.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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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론성지에서는 황사영이 백서를 쓴 토굴과 신학생들이 병인박해로 신학교가 닫히기 전까지 라틴어와 신학을 공부한 옛 성 요셉 신학교 터를 복원하였다.

 

이곳에서는 또한 해마다 원주교구 사제, 부제 서품식이 거행되고 있으며, 최양업신부와 원주교구 초대 교구장을 역임했고, 유신독재에 저항하여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지학순 주교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성지 인근에는 순교자 남상교의 유택과 봉쇄 수녀원이 자리잡고 있다.

 

황사영이 순교하고 관련된 신자들이 모두 처형되면서 배론교우촌도 파괴된 후 배론에 교우촌이 다시 형성된 것은 1840년대였다, 1855년 초에는 배론 공소 회장 장주기(요셉)의 집에 성 요셉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교장 푸르티에 신부, 교사 프티니콜라 신부가 조선인 신학생을 가르쳤고, 장주기는 한문 교사와 공소회장으로 활약하였다.

이 신학교가 바로 현 가톨릭대학교가 그들의 전신으로 지목한, 격식을 갖춘 최초의 신학교였다


 

배론(舟論)은 치악산 동남 기슭에 우뚝 솟아 있는 구학산(985m)과 백운산(1,426m)의 연봉이 둘러싼 험준한 계곡 양쪽의 산골 마을로 골짜기가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고 하여 배론이라 불리었다.

 

이곳은 조선교회의 교우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굽는 육체노동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그리스도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1866년 병인박해 전에 배론은 6개 마을로 아랫배론, 중땀배론, 웃배론, 점촌배론, 박달나무골, 비득재마을이 있었으며, 약 70여호가 살고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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