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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거문도

by 산골지기 2016.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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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4월, 러시아의 남진 정책을 핑계로 영국 내각은 중국 주둔 함대사령관 윌리암 도드웰 해군제독에게 거문도 점령 명령을 내렸다.

 

거문도 내해는 수심이 깊어 큰 군함의

정박이 가능하고 풍랑을 피할 수 있는 천연의 대피항이다.

게다가 대마도와 제주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은 군사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의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거문도는 오랫동안 영국과 러시아 두 제국이 눈독을 들였다. 



1885년 4월 15일, 영국 군함과 수송선은 거문도를 점령한다. 영국제국주의 해군은 1887년 2월까지 거문도에 주둔한다. 이른바 '거문도사건'이다. 영 제국주의는 러시아 견제를 핑계로 거문도를 점령했지만 조선 영토를 식민화하려는 야심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정부는 거문도가 점령당한 사실을 20여 일 동안이나 알아채지 못했다.



영국은 거문도 점령 40여 년 전에 이미 해군함정 사마랑호를 동원해 제주에서 거문도까지 해역을 한 달 여에 걸쳐 정밀 탐사한 바 있다.

그 당시 영국 해군성 차관이었던 해밀턴의 이름을 따 거문도를 해밀턴항으로 이름 붙이기도 했다.

 

거문도 점령 후 영국군대는 사람이 적게 살던 고도에 군대 막사를 짓고 항만 공사를 했다.

테니스 코트와 당구장 등도 이때 처음 거문도에 생겼다. 2년 동안 거문도 주민과 영국 점령군은 비교적 사이좋게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영국군은 주민들에게 치료약을 공급하고 노임을 지불해 가며 공사 일을 시켰다.

 

 

섬 주민들과 마찰을 피하기 위한 영국군의 유화 전략이었겠지만 조선 왕조 하에서 강제 부역에만 종사했던 섬 주민들은 그것을 고맙게 여겼다. 섬 주민들은 영국군과 협상 차 거문도에 온 조선 정부의 대표 엄세영에게 "자기 백성을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노임 받고 일하는 것을 방해한다."고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전한다.

조선 왕조 지배 세력의 섬에 대한 수탈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영국군이 거문도를 점령하자 재빠른 일본 상인들은 서도에 유곽을 만들었다. 구전에는 영국 수병들이 밤중에 헤엄을 쳐서 유곽으로 가다 빠져 죽기도 한 것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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