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리 역사/고려

김사미의 난과 효심의 난

by 산골지기 2016. 6. 10.
728x90
김사미의 난과 효심의 난은

 

1193년에 일어났다.

 


 

 각각 운문(청도)과 초전(울산) 에서 일어난 농민반란인데  각각 다른 곳에서 일어났지만, 같은 시기에 과거신라의 중심 지역에서 일어난 것과 농민이 주동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시 고려는  무신정권이

 

성립되어

 

이의방, 정중부, 경대승 정권을 거쳐 이
의민이 10년 간 조정을 장악하던 때였다.

 

 1193년 7월 경상도에서 대대적으로 농민들이 봉기하다.


 무신들의 하층민에 대한 착취와 수탈이 계속되자 고려의 기반 계층인 농민들이 이반하기 시작했고 1190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산발적으로 농민들의 항거가 시작됐다.

 

그러다가 1193년 7월 경상도에서 대대적
으로 농민들이 봉기하였던 것이다.



 

 ♣ 고려 조정----- 농민반란군 토벌전 감행

토벌대장은 대장군 전존걸이었으며, 장군 이지순, 이공정, 김척후

김사미와 효심이  운문과 초전에서 난을 일으키자 조정은 농민반란군 토벌전을 감행했다. 토벌대장은 대장군 전존걸이었으며, 장군 이지순, 이공정, 김척후. 김경부, 노식 등이 부장으로 출전하였다.


 

이때 토벌대 지휘관으로 출전한 이지순은 당시의 실권자 이의민의 아들로서아버지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김사미, 효심이 이끄는 반란군과 내통하였다. 이에 반란군은 이지순을 이용하여 식량과 무기를 구입하고 토벌대에 맞섰다.

 

이지순은 아비 이의민의 명령에 따라 농민군과 힘을 합쳐 신라를 재건한다는 계획을 세우기까지 하였다.

 

이 바람에 정부군은 쉽사리 농민군을 진압하지 못했고 농민군은 점점 세력을 넓혀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 정부군 대장 전존걸 자살

 이의민의 권력욕을 적절하게 이용한 농민군은 수개월을 버티면서 정부군을 농락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지순이 농민군과 내통하고 있다는 사
실을 안 정부군의 대장 전존걸은 “만약 법으로 이지순을 다스리면 그 아비 이의민이 나를 해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적이 더욱 거세질 것이니 장차 죄가 누구에게 돌아가겠는가?” 하고 탄식하다가 자살을 하였다.

 

 

 

 

이후 토벌대장은 다시 상장군 최인으로 교체되었고, 1194년 2월에 김사미의 농민군이,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효심의 농민군이 정부군의 맹렬한 공략을 이겨내지 못해 무너지고 만다. 이의민은 그 즈음 이들과의 내통을 끊었다

'우리 역사 > 고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경민란  (0) 2016.06.10
경상도 지역의 민란  (0) 2016.06.10
쌍성총관부  (0) 2016.06.05
고려의 왕  (0) 2016.06.05
초창기 금속활자  (0) 201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