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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고려

쌍성총관부

by 산골지기 2016.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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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성총관부는 동녕부보다

앞선 1258년에 설치되었다.



공민왕은 개혁정치를 단행하면서 쌍성총관부를 회복하였다.

고려가 쌍성총관부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이성계의 아버지인 이자춘이 많은 공로를 세웠다.

 

 동녕부가  고려에 반환된 후에도  쌍성총관부는 약 100년 동안 원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쌍성총관부 관할 지역은 여진족이 다수 거주하는 등 민족 구성과 역사가 복잡하였다.

 

 

 원이 고려를 침략할 때 길목의 역할을 하였다.

 

 몽골과의 전쟁이 길어지자 고려를 배반하고 몽골에 투항하는 자들도 나타났으며, 여러 지역이 원에 항복하여 쌍성총관부가 설치되었다.

원은 철령을 경계로 고려 출신으로 몽골에 항복한 조휘를 쌍성총관부 총관으로 삼고, 탁청을 천호로 임명하고 따로 다루가치를 파견하여 다스렸다.

 

고려는 원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1287년(충렬왕 13) 쌍성총관부의 반환을 요구하여 일부 지역을 돌려받았다.

 

그리고 1356년(공민왕 5)에 이 지역의 유력자인 이자춘, 조돈 등의 협력으로 쌍성총관부를 탈환하였다.

이후 고려는 마천령 이북까지 진출하였다.

Dongnyeongbu but soon returned to the consideration, was under the control of binary blowing chonggwan won for around 100 years.

 

Is considered a revolt broke out in a circle by requiring 1287 (chungryeolwang 13) Binary chonggwan negative returns were returned to some areas.


 


And it was recaptured a binary chonggwan with the cooperation of the yijachun, including jodon potentate of the region in 1356 (gongminwang 5).


  After consideration was advanced to town north cheonr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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