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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

서아시아의 변화

by 산골지기 201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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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는 이후 쇠퇴하여 한때 미탄니 왕국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다. 기원전 13세기 무렵 국력을 회복하기 시작하였고, 히타이트와 미탄니로부터 말과 철기 등의 기술을 도입해 군사력을 키웠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9세기 초부터 각지에 원정군을 파견하여 기원전 8세기 후반에는 바빌로니아, 시리아, 이스라엘을 정복하였다.

 

기원전 7세기 전반에는 이집트를 정복하였다.

 

 

 

아시리아의 왕들은 아시리아 본토는 직할지로 하고,

 

 

그 외의 지역은 속주 등으로 삼아 다스렸다.

 

 

각 지역에는 통치를 위해 군용 도로와 통상로가 정비되었으며, 거대한 지구라트가 세워졌다.

 

수도인 니네베에는 메소포타미아

 

각지에서 수집된 수메르 이래의 점토판 문서를

 

보존하는 도서관이 세워졌다.

 

하지만 아시리아의 정치는 무력에 의한 것이었고, 지나치게 강압적이었기 때문에 정복지 주민의 반항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아시리아는 정복지 주민의 반란으로 멸망하였다.

 

페르시아는 오늘날의 이란을 가리키는 말이다. ‘페르시아’나 ‘이란’이란 명칭은 모두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때 시작되었다.

 

 

‘페르시아’는 아케메네스 왕조가 자신들을 ‘파르샤’라고 부른 것을 라틴 어로 나타낸 것이고, ‘이란’은 아케메네스 왕조 시절에 자신들을 지칭한 것을 근대 페르시아 어로 표기한 것이다.

 

 

페르세폴리스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수도로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뜻의 그리스 어이다.

 

 

기원전 518년 다리우스 1세 때 60년에 걸쳐 왕궁을 세웠다. 면적은 125,000㎡나 되었으며, 오늘날 이란의 테헤란으로부터 1,000km 떨어진 시라즈의 북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페르세폴리스의 궁전 유적에는

여러 민족이 신년식을 맞아 다리우스 1세에게

 

공물을 바치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회랑 벽면에는 28개의 속국에서 온 조공의 행렬도가 그려져 있다.

 

 


 

 이들 부조에는 낙타를 몰고 온 아라비아인,

 

들소를 가져 온 간다라인, 전차를 끌고 온 리디아인까지

 

 다양한 민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 중에는 페르시아가 총독을 파견하여 다스리는 속주도 있었지만,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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