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는 마케도니아 왕으로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뒤 즉위하였다. 마케도니아의 북방에서 일어난 반란을 평정하던 중 그리스의 폴리스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곧 남하하여 테베를 정복하였으며, 전 시민을 노예로 팔았다(기원전 335). 그 뒤 코린트에서 그리스 폴리스 연합군을 조직하여 소아시아를 공격하였다.
이를 통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군을 물리쳤으며, 페르시아 왕 다리우스 3세는 도망갔지만, 뒤에 부하에게 살해되어 페르시아 제국은 멸망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한 뒤 인도까지 진출하였지만, 인더스 강에서 군대를 돌려 돌아왔다.
그리고 원정을 축하하는 연회를 열고 다리우스 3세의 딸과 결혼하였다. 부하 장군 80명에게도 페르시아 귀족의 딸을 아내로 주었으며, 나아가 장병 가운데 아시아 여인을 아내로 삼고 있는 경우 이를 정식으로 인정하여 1만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결혼식을 올렸다. 그는 이후 기원전 323년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열병에 걸려 죽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원정 과정에 각지에 도시를 건설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라고 명명하였다.
이들 도시의 대부분은 병참 기지로 건설되었으며, 이후 그리스의 문화를 서아시아에 전파하는 거점이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로 이름 붙여진 도시는 모두 70개라고 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이집트의 나일 강 하구에 세워진 것이다. 이는 다른 도시와 같이 병참 기지가 아니라 상업 도시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아 지금까지도 상업 항구로 번영하고 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수도로 번성해 “눈(雪)말고는 무엇이든 있다.”고 일컬어지기도 하였다.
‘고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파로스의 등대를 비롯하여 수많은 장서가 소장된 대도서관 등이 있어 자연 과학 등 학문의 중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