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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180

북한의 변화 서울의 광화문에서는 북한의 개성까지 가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출발한다. 개성 공업 지구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태워가기 위해서이다. 북한은 모든 경제 활동을 국가에서 계획 관리하는 계획 경제 체제이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경제난이 심각해지고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유 시장 경제 체제를 받아들이자, 제한적으로 개방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영토의 일부를 외국인과 외국 자본에 열어 두는 개방 지역을 설정하여 경제 발전을 꾀하고 있다. 첫 시도로 1991년 나진과 선봉 일대를 무역 특구로 지정해 외국의 자본을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이곳의 기반 시설이 부족해 큰 성과는 없었다. 2002년에는 금강산 관광특구를 지정하여 남한 주민의 금강산 관광이 가능해졌고, 신의주 특별 행정구를 지정하기도 했다... 2016. 10. 27.
부산정치파동 1950년, 5·30 선거 결과 야당이 압승하여 대통령 이승만의 재선이 어려워지자 1951년 11월 30일, 정부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그러나, 1952년 1월 18일에 국회가 이를 부결함으로써 정부와 국회간의 알력이 표면화되었다. 이에 정부는 국회해산을 요구하는 '관제민의(官製民意)'를 동원하여 국회 의원을 위협하는 한편, 5월 25일에 국회 해산을 강행하기 위하여 부산과 경상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23개 시·군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5월 26일, 대통령 직선제를 강행하는 한편, 내각제를 주장하는 야당 의원 50여 명을 헌병대가 연행(정헌주(鄭憲柱), 이석기, 서범석, 임흥순, 곽상훈, 권중돈 등 12명은 국제 공산당 관련 혐의로 구속)하는 정치파동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 2016. 10. 20.
군사분계선 군사분계선(MDL)을 기준으로 하여, 북쪽으로 2 k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북방한계선"(NLL)이라 하고, 남쪽으로 2 km 떨어진 비무장지대의 경계선을 "남방한계선"(SLL)이라고 한다. 북방한계선과 남방한계선에는 철책이 쳐져 있으며, 남북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다. 1963년부터 북측이 요새와 진지, 철책을 구축하면서 한반도의 비무장지대는 비무장 지대(非武裝地帶)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남북 양측의 무장 군인들이 상시 주둔하는 전방 감시 초소(GP)가 곳곳에 있으며, 일부 GP와 GP 사이에는 '추진철책'이라는 이름의 철책이 설치되어 있다. 북측은 '민경대'(民警隊), 남측은 '민정경찰'(DMZ Police)이라고 자처하지만, 실질은 양쪽 모두 무장한 군인들이다. 비무장 지대 내의 민간인 거.. 2016. 10. 16.
5·16 군사 정변 1961년 5월 16일 새벽,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을 주도로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의 쿠데타 세력이 한강을 건너 방송국을 비롯한 서울의 주요 기관을 점령했다. 이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의 3권을 통합·장악한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미국 정부의 신속한 지지 표명, 장면 내각의 총사퇴, 대통령 윤보선의 군사 정변 인정 등에 힘입어 정변의 합법성을 주장했다. 쿠데타 세력은 군사혁명위원회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고 3년간의 군정통치에 착수했다. 이들은 핵심적인 권력기구로써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이를 근간으로 민주공화당을 조직했다. 새로 구성될 민간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했으며, 1963년 10·11월의 양대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2016.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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