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가 전개가 되면서 초기 국가들이 형성이 되게 됩니다.
고조선에 전파된 철기 문화는 만주 지역을 비롯하여 한반도 각지로 확산되었는데요 철을 이용하여 무기는 물론 농기구와 생활 도구들을 만들었습니다.
철기시대에는 철제 농기구를 이용하여 땅을 깊게 갈아 농작물을 보다 쉽게 재배할 수 있었는데요 철제농기구의 사용으로 인하여 농업 생산량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철기시대에는 정복전쟁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됩니다.
철제 무기를 이용하여 전투력을 키운 부족은 다른 부족들을 정복하며 세력을 확대하였는데요 정복전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가운데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여러 나라가 성립하였습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성립된 국가로는 송화강을 배경으로 일어난 부여와 압록강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고구려가 있습니다.
철기문화가 전개가 되는 가운데 한반도 동북부 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나타났습니다.
옥저는 함경도의 함흥평야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고요 동예는 강원도 북부지역에서 나타났습니다.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서 국가들이 성립이 되는 가운데 한반도 남부 지역에는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이 성장하였습니다.
초기 국가의 형성 |
철기 문화를 배경 |
송화강을 배경으로 일어난 부여 |
압록강을 배경으로 하여 일어난 고구려 |
옥저--- 함경도의 함흥평야지역을 중심 |
동예--- 강원도 북부지역 |
*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
고조선에 이어 처음으로 등장한 나라는 부여입니다.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는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에 이미 국가를 형성하였는데요 국가의 형태는 연맹왕국이었습니다.
연맹 왕국을 이룬 부여의 왕은 각 부족장을 대표하였는데요 왕권이 약했기 때문에 부족장들에 의해서 축출이 되기도 했습니다.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의 왕 아래에는 독자적인 영역을 다스리며 정치에 참여하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 등이 있었습니다.
부여는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후에 농경과 목축을 주로 하였고요 주변의 중국 군현과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부여에는 엄격한 법이 존재하였는데요 여성의 투기죄를 매우큰 중죄로 다스렸습니다.
또 부여에서는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에서는 지배층이 죽으면 많은 사람을 함께 죽여서 묻는 순장을 하였습니다.
또 사냥이 시작되는 12월에는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는 부족연합체 형태로 발전을 하다 후에 고구려에 흡수가 되게 됩니다.
* 압록강 유역에서 일어난 고구려
고구려는 부여에서 파생된 나라인데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유역에서 처음 성립하였습니다.
고구려를 세운 인물은 동부여세 탈출해온 주몽입니다.
동부여세 탈출해온 주몽은 압록강 유역의 토착세력들을 제압하고 고구려를 열게 됩니다.
주몽이 세운 고구려는 한의 군현을 물리친 여러 세력이 연합하여 성립하였는데요 쑹화강 유역에서 일어난 부여와 마찬가지로 연맹 왕국을 이루었습니다.
고구려는 부여에서 파생된 나라이기 때문에 고구려 지배층의 상당수는 부여 출신이었습니다. 산악 지대에 위치한 고구려는 농사를 짓기 어려워 초기에는 부여보다 세력이 약하였습니다.
농사에 불리한 조건을 가진 고구려는 무예를 닦아 주변 지역을 정복하면서 세력을 넓혀 갔습니다.
고구려에도 고조선이나 부여와 같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든 엄격한 법이 있었고요 한 혼인한 뒤 신랑이 신부의 집에서 일정 기간거주하는 서옥제라는 결혼 풍습이 있었습니다.
고구려는 10월에는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옥저와 동예
철기가 전래된 후 철기시대가 전개되는 가운데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 옥저와 동예가 성장하였습다
옥저와 동예에는 왕이 없었고 읍군, 삼로라는 군장이 각자의 영역을 다스렸는데요 옥저와 동예는 농사가 잘되고 해산물도 풍부하였습니다.
옥저와 동예 |
읍군, 삼로라는 군장이 지배 |
사가 잘되고 해산물 풍부 |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 옥저와 동예가 성장하는 가운데 개마고원지역에는 개마국이 있었습니다.
함경도와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 일어난 옥저와 동예는
해산물은 풍부하였지만 고립된 지형의 영향으로 발전이 늦었는데요
고구려에 공물을 바치는 등 많은 간섭을 받은 후에 고구려에 흡수가 되게 됩니다.
동예에는 같은 부족끼리 결혼하지 않는 족외혼의 풍속이 있었고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소, 말 등으로 갚게 하는 책화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강원도 북부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발전을 하던 동예는 10월에는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는 축제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였습니다.
함흥평야를 배경으로 하여 발전한 옥저에서는 신부가 될 여자아이를 신랑 집에서 미리 데려다가 기르는 민며느리제가 유행하였습니다.
또 옥저의 장례풍속으로는 시신의 뼈를 추려서 가족 공동의 나무 곽에 넣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마한과 진한, 변한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마한과 진한, 변한의 삼한이 성장하였습니다
마한은 54개의 소국으로 이루어진 연합체이고요 마한의 중심소국은 목지국이었습니다.
진한과 변한에는 12개의 소국이 있었습니다.
진한의 중심국가는 사로국이었고요 변한의 중심소국은 구야국이었습니다.
마한의 중심소국--- 목지국 |
진한의 중심국가--- 사로국 |
변한의 중심소국--- 구야국 |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는 여러 소국이 모여 마한, 진한, 변한을 이루었는데요 삼한의
또 천군이라는 제사장이 제사의식을 이끌었습니다.
삼한의 제사장인 천군은 자신의 영역인 소도를 다스렸는데요 소도는 죄인이 도망쳐 와도 잡지 못하는 신성한 지역이었습니다.
한반도 남부지역을 배경으로한 삼한은 농사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지닌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벼농사가 잘되었습니다.
삼한에서는 벼농사를 위하여 저수지도 만들었는데요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로는 밀양의 수산제를 비롯하여 제천의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 경상도 상주의 공검지가 있습니다.
삼한시대에 만들어진 저수지 |
제천의 의림지 |
밀양의 수산제 |
김제의 벽골제 |
상주의 공검지 |
제사와 정치가 분리된 삼한에서는
씨뿌리기가 끝나는 5월과 추수가 끝나는 10월에 풍요를 기원하고 추수에 감사하는 제천 행사를 열었습니다.
낙동강 하류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어 이를 화폐처럼 사용하였습니다.
변한 지역에서 생산된 철은 낙랑과 왜에 수출하기도 하였습니다.
변한 |
낙동강 하류지역을 배경 |
철이 많이 생산 |
생산된 철--- 낙랑과 왜에 수출 |
낙동강 하류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변한은 이후 가야로 전개가 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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