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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근현대사

우리나라 근대 학교

by 산골지기 2018.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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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엽에 우리나라에는 근대 학교들이 설립이 되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민간인들에 의해서 설립된 근대학교는 함경도 덕원의 원산학사였다.

이후 정부주도의 학교들도 세워지게 되었는데 영어 강습기관인 동문학이 1883년에 세워지게 되었고 역시 외국어와 신지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1883년에 육영공원을 건립하였다.


육영공원에서는 헐버트등 미국인 교사 3명을 초빙하여 근대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여기서도 주로 영어 교육을 하게되었다.



이후 육영공원의 교사인 헐버트는

고종을 도와서 우리나라의 민족운동에 협조하기도 하였다.

 

이후 근대학교는 기독교의 선교사들을 통하여 많이 건립이 되었는데 배재학당이나 이화학당 정신여학교등이 기독교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였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서는 최초의 근대 학교를 개화기에 설립된 육영공원(育英公院, Royal English School)과 원산학사(元山學舍)로 소개하고 있다. 1886년에 설립된 육영공원은 정부가 외국어를 해독할 수 있는 관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 아래 설립하였다. 

 

좌우 양원으로 학급을 편성하였는데, 좌원에 나이 어린 정부 관리를, 우원에 양반 계층의 자제들을 수용하였다고 한다. 육영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국립학교였다.

 육영공원보다 시기적으로 더 앞서는 

또 다른 근대 학교는 1883년에 민관 협력으로 

함경남도 원산에 세워진 원산학사였다. 

 

원산학사는 지방 관료들과 주민들이 힘을 합하여 설립한 최초의 근대식 사립학교였다. 신지식을 신세대에게 가르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밀려오는 서양 문물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하려는 건학 이념을 담고 있었다.

 도도히 밀려오는 서양 문물에 주도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당시 우리 민관의 노력은 근대 학교 시스템의 공적 제도화와 민족사학 설립 운동 등으로 확대되었다. 

 

구국의 일념을 갖고 있던 민족 선각자들은 개화기 이후 국권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에서 국민 계몽을 통해 나라의 기운을 키우기 위해 왕성하게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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