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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중국사

항저우

by 산골지기 2017.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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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는 2,200년 전 진나라 때 건립되었으며,

중국의 7개의 고도 중 하나로 손꼽힌다.


시 지역에는 7000년 전의 중국 신석기시대에는 양저문화의 발상지이며, 벼농사 유적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인 신석기 문명의 대표유적인 하모도 문화(河姆渡 文化)(기원 전 5000 ~ 4500) 유적이 있다. 중국 육대 고도로 꼽히며, 그 기원은 진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진나라 때는 회계군을 다스리는 관청이 설치되었다.

 

항저우에 성벽이 쌓여진 것은 591년 수나라(隋) 때이다. 또한 수나라 때 건설된 대운하의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대운하를 이용한 상업망이 발전하였고, 항주의 거리도 번창해 갔다. 항주의 이름이 시작된 것은 당대이다.


 

907년~978년까지 5대 10국 시대에도

오월국(吳越國)의 수도가 되었고,

서호(西湖)도 그 당시 이름이 지어졌다.

10세기에는 난징과 청두와 함께 남송의 위대한 문화의 중심지였다. 12 세기 전반에 북송의 수도인 개봉이 금나라에 의해서 함락되고 나서는, 남송이 임안부를 두어 실질적인 수도가 되었다. 남송 초기, 금나라에 대해서 강경책을 주장한 악비의 묘인 악왕묘(岳王廟)가 있다.

항저우는 12세기 초부터 1276년 몽골이 침입하기까지 남송의 수도였고, 임안(臨安)으로 알려졌다. 당시 북쪽으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중앙의 중국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저우는 중국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남송이 원나라에 멸망되면서, 몽골 제국이 구축한 육상 네트워크와 해상 세계를 묶을 수 있고 교역을 통해서 한층 더 발전을 이루었다.

그 번영성세는 마르코 폴로가 「동방견문록」으로 기록하고 있다.

19 세기 중반 태평천국의 난으로 거리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많은 역사 문화재가 소실되었다.

수많은 철학자와 정치인, 문인이 배출되었으며, 소식(蘇軾) 등의 대문호가 배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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