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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조선

폐비윤씨

by 산골지기 2017.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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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윤씨는 성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어 숙의의 지위에 있다가 공혜왕후가 죽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남편 용안에 상처를 내어 폐비되어 사사되었습니다.

아들 연산군 즉위 후 제헌왕후로 추존되었으나 중종반정 이후 삭탈되면서 죽을 당시의 폐서인 신분으로 돌아갔습니다.


사사 당시 윤씨는 친정어머니 신씨에게 세자가 자라서 왕이되거든 피를 토한 금삼을 넘겨줄 것을 유언했고, 이는 후일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도화선이 되게 됩니다.

연산군은 자신의 모친이 되는 윤씨를 제헌왕후로 왕비의 작호를 추숭시켰는데 중종 반정이 일어난 후 왕후의 호는 삭탈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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