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명과 사대의 관계를 맺고 있던 조선은 사신 왕래를 통해 조공 무역을 행했다. 세종 이전가지는 매우 불평등한 관계였지만 세종에 이르러서는 금과 은 세공이 면제되면서 경제적인 교류가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여진과는 ‘진상 숙배’라는 관무역이 행해졌는데 진상(進上: 지방의 토산 물 등을 바침)하면 조선이 회사(回賜 : 되돌려 하사하다)하는 형식의 관무역이 행해졌다.
태종 6년에는 여진족들의 생활에 필요한 소금과 철을 자유롭게 사들이게 하여 변방의 우환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두만강 유역의
경원, 경성에 무역소 설치
조선은 여진에게 시라소니, 해동청과 각종 모피 등을 진상 받았고 조선은 여진에게 면포, 베, 모시, 금은, 철기, 농구, 식기나 쌀 각종 곡식과 조미료 등의 식료품을 하사했다.
조선은 왜에게 삼포를 개방했는데(세종 25년, 1443), 세견선(歲遣船 : 대 일본 무역선) 50척으로 제한하였으며 주로 동래에 설치한 왜관(倭館 : 일본 사신과 상인이 머무르던 객사)을 중심으로 주로 대마도와의 무역을 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