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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떠이 썬 정권

by 산골지기 2016. 9.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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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이 썬은 봉기가 일어난 지역의 이름이다. 이 지역에서 응우옌 반 냑, 응우옌 반 르, 응우옌 반 후에 삼형제가 조직적인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1771)것이 떠이썬 운동의 시작이다.

 

참고로 이들 응우옌 씨는 남부의 응우옌 정권 가문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응우옌은 베트남인의 40%를 차지하는 성씨로, 우리나라의 김,이,박,최에 해당하는 매우 흔한 성씨로 단순한 우연의 일치이다.

 


떠이 썬 지역은 응우옌씨의 통치 지역에 해당했다. 그렇기에 당시 찐 정권의 통치자였던 찐 썸은 이 사건을 응우옌 정권 붕괴의 호기로 여기고 남침하여 응우옌 씨의 수도인 푸 쑤언을 함락시켰다(1775).

 

이 시기 떠이 썬 당은 북쪽의 찐 씨 정권, 남쪽의 응우옌 씨 정권의 공격을 받아 붕괴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래서 응우옌 반 냑은 일시적으로 찐 씨에 복종하는 척 하면서, 응우옌 정권을 멸망시키는 데 가담하였다. 그리하여 1777년 응우옌 정권이 피신한 도시 쟈 딘을 함락시키고, 응우옌 일족을 몰살시킨 뒤 권력을 장악하였다.

 


떠이 썬 정권은 이후 '복려멸정(레 씨 왕조를 복귀시키고, 찐 씨를 멸한다)'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응우옌 반 후에를 사령관으로 삼아 북진하였고, 찐 씨 정권마저 격파하고 수도 탕 롱에 입성하여 레 왕조의 황제를 옹립한다.

 

떠이 썬 정권의 입장에서 보면 레 왕조의 황제는 그야말로 골칫거리였다.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복려멸정' 이었으니 황제를 시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대로 놔 두면 농민 정권이라는 떠이 썬 정권의 성격상 이래저래 대립의 불씨가 되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것이 스스로 외세를 끌어들여 황제를 폐할 명분을 제공해 준 것이다. 그리하여 응우옌 반 후에는 청의 건륭제가 보낸 원정군을 격파(1788~1789)하였고, 이로써 후 레 왕조는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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