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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일어날 당시 인도의 종교계는 다른 고대민족과 마찬가지로 애니미즘적 경향을 띤 원시신앙이 지배하고 있었고, 『베다』와 『우파니샤드』에 근거를 둔 브라마니즘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개인 속에 내재하는 원리로는 아트만을 상정하고, 우주의 궁극적 근원으로는 브라만을 설정하여 이 두 원리는 동일한 것[梵我一如]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또 인간의 행위는 전생의 업에 의해 지배된다고 하였고, 현재의 행위는 미래의 고락(苦樂)을 결정한다는 윤회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 윤회에서 해탈하는 것을 당시 사상가·종교가들은 최고의 이상으로 주장하였다.
업(業)·윤회·해탈의 사상은 후대 인도사상의 골격을 이루는 것이며, 불교 역시 이러한 인도의 전통적 사상을 근저로 하고 새로운 종교사상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다.
석가도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이러한 종교적 풍토 속에서 브라마니즘의 수행방법을 따랐다.
석가가 29세에 부인인 야쇼다라(Yasodhara, 耶輸陀羅)와 아들 라후라(Rahula, 羅睺羅)를 버리고 출가하여 택한 수행방법은 당시에 크게 유행하고 있던 선정(禪定)과 고행(苦行)이었다.
처음 출가한 석가는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우다카 라마푸타(Uddaka Ramaputta)에게서 가르침을 받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5명의 수행자와 함께 고행의 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