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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렌과 언더우드가 갈등을 빚은 후 알렌 후임으로
부임한 선교사는 헤론(Heron)이었다.
헤론은 의료선교사였던 알렌과 같이
선교회의 모든 것을 단독으로 처리해 나가려고 하였다.
이것은 영국과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적 환경에서 자랐고, 또 개척선교사로서의 여러 가지 교육, 교회건축, 성경번역등 수많은 계획을 이행하고 있었던 언더우드에게 매우 받으들이기에 힘든 상황이었다.
언더우드는 헤론과도 갈등을 빚었는데
언더우드는 헤론의 독단적 의사결정에 반대하여 맞섰다.
헤론이 질병으로 사역 중 소천하게 되자,
언더우드는 그의 장례 및 장지까지 마련하여 주었다.
서울에는 장지를 주지 않으려는 정부에 계속 탄원하여,
마침내 양화진을 선교사묘역으로 확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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